[장관 해임안 역대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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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헌정사에서 장관 해임건의안은 30건이 표결됐으며 이중 3건이 가결됐다. 1955년(3대국회) 임철호 농림장관(불신임 결의안), 1969년(7대국회) 권오병 문교장관, 1971년(8대국회) 오치성(吳致成)내무장관 등 세명이다.

해임건의안이 헌법에 보장된 것은 3공때 부터다. 따라서 이번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안이 가결되면 30년 만에 장관 해임안이 통과되는 셈이다.

특히 71년 吳장관 해임안 통과는 吳장관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김종필(金鍾泌.JP) 당시 총리에 대한 '공화당 실세 4인방' 의 반란이었다.

당시 국회의 의석 분포는 여당인 공화당 1백13석.신민당 89석.기타 2석으로, 함께 제출된 김학렬 재무장관과 신직수 법무장관 해임안은 부결됐는데도 吳장관 해임안은 총투표 2백3표 중 찬성 1백7표, 반대 90표, 무효 6표로 가결됐다. 공화당에서 최소한 20표 이상이 이탈한 것이다.

이 항명사태는 김성곤(金成坤)당 중앙위원장.길재호(吉在號)사무총장.백남억(白南檍)당의장.김진만(金振晩)재정위원장 등 4명이 주도했고 이 사태 이후 이들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탈당하는 등 정치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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