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슬로푸드… 비만 잡는 데 제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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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호 18면

2001년부터 1년간 호주 시드니대에서 교환교수로 있었다. 당시 진료 중 만난 현지 비만 환자가 “호주에 거주한 지 얼마나 됐느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난 “6개월 정도 됐다”고 답했다. 그런데 환자가 두 번째 던진 질문이 흥미로웠다. 그는 “반년이나 됐는데 왜 아직 살이 찌지 않았느냐”며 의아해 했다. 실제로 미국·영국과 함께 대표적 비만 국가인 호주에 왔는데도 필자는 오히려 체중이 2㎏ 줄었다. 답은 한국식 식단에 있었다. 우리 가족은 호주에서도 한식 식습관을 유지했다. 그리고 한국보다 회식이 적었고, 외식할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패스트푸드를 거의 먹지 않았다. 이게 체중이 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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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의 원인 중 하나는 패스트푸드다. 패스트푸드는 포화지방·당·소금 함량이 높아 만성질환의 도화선인 대사증후군을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패스트푸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일어난 움직임이 슬로푸드 운동이다.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리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는 음식이 슬로푸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전통음식인 한식은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수년 전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식의 건강 유익성에 대한 국제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백인들을 대상으로 한식 섭취군과 양식 섭취군의 체중 변화, 건강수준을 비교했다. 그 결과 백인들에서도 한식을 먹은 집단은 양식을 먹은 집단보다 복부비만과 당뇨병 등 대사질환의 발생위험이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식이 이처럼 인종을 막론하고, 양식에 비해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포만감을 주면서도 건강에 유익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식의 중심인 밥은 맛이 강하지 않아 다양한 종류의 반찬과 잘 어울리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밥 중심 식사가 영양소의 균형을 맞추는 데 기여를 하는 측면이 있다. 밥에 국, 생선구이, 나물, 김치 등이 어우러지면서 균형 잡힌 영양과 다양한 풍미를 맛 볼 수 있게 한다.

한국인들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밥 중심의 식사를 할 때에 비해 배가 쉽게 꺼져 빨리 허기를 느낀다고 한다. 이 말은 맞다. 밥의 전분은 체내에서 서서히 소화 흡수되며 밥과 반찬을 번갈아 먹게 되므로 혈당 상승이 느리고 포만감을 더 느끼게 된다. 밥 중심 식사는 섬유소의 함량이 높아 음식의 양에 비해 열량이 낮으며 소화관 내에서 수분을 흡착해 부풀어 오르게 된다. 이 때문에 포만감을 주어 배불리 먹으면서도 섭취 열량이 빵 중심의 식사처럼 높지 않다. 이런 점이 비만 예방에 매우 긍정적이다.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머니가 정성 들여 만들어 주신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억은 어릴 적 부모와 함께한 여행에 대한 추억과 함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고 한다. 우리 소중한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한식을 중심으로 한 슬로푸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질병으로 선언한 바 있다. 밥과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을 수 있는 한식이야말로 비만·만성질환·정신건강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표적인 슬로푸드 건강식이라 할 수 있다.



강재헌(47) 인제대의대 서울백병원 비만·건강증진센터 소장. 식약청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심의위원 등 역임. 저서로는 『마지막 다이어트』 『소리 없이 아이를 망치는 질병-소아비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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