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학급증설 현장점검

중앙일보

입력

경북의 K여고 교장은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정부가 학급당 인원을 35명으로 줄이기로 한 뒤 교실을 늘려야 하지만 터가 마땅찮아서다.

그는 "교실 12개를 더 확보해야 하는 데 땅이 없다" 며 "학교 뒤 사유지를 매입해 건물 한 동 (棟) 을 짓자고 교육청에 건의했지만 '돈이 많이 든다' 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며 한숨을 쉬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7월 고교의 학급당 인원을 35명으로 줄이는 교육여건개선계획을 발표하면서 교육 현장이 들끓고 있다.

교실을 지을 터가 제대로 없는 데다 교실 확보를 위해 휴게실.체육시설 등을 마구잡이로 없애자 학교는 교육여건의 개선이 아닌 '개악' 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 터 찾기 비상 = 대구.경북의 몇몇 학교는 방학중 일부 교사를 긴급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교실을 지을 터를 찾으라" 는 교육청의 지시 때문이었다. 교사들은 "학교 설계도를 놓고 '줄긋기' 를 했다" 고 말한다.

K여고는 터가 마땅찮아 기존 복도를 함께 사용하는 복식교실을 짓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복식교실은 복도 좌우에 교실이 들어서 햇볕이 차단되고 통풍도 제대로 안돼 문제가 많다" 며 "하지만 땅이 없어 이렇게라도 지을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7개 교실을 확보해야 하는 D여고는 궁리 끝에 건물과 건물 사이 화단 (잔디밭)에 2층 건물을 짓기로 했다.

D고는 본관 건물과 식당건물 사이의 휴식공간인 파고라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3층 건물을 올려 8개 교실을 확보하고, Y고도 나무가 있는 운동장 동쪽 끝에 10개 교실을 짓기로 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특명' 이라며 무조건 지으라고 해 어쩔 수 없지만 '학교 난 (亂)' 개발을 부추긴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 악화되는 교육환경 = 14개 교실을 확보해야 하는 경북 K고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 구관 (21개 교실) 을 개조하기로 했다. 교사를 새로 짓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곳에 종합휴게실과 운동시설을 해 학생들의 휴식.체력단련 공간으로 활용하려던 당초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G여고도 운동장 서쪽 테니스장을 없애고 7개 교실을 짓기로 했고, D고 역시 운동장 동쪽에 8개 교실을 세우기로 해 테니스장이 폐쇄되고 운동장도 좁아지게 됐다.

한 교사는 "7차 교육과정 시행을 앞두고 특기.적성교육을 위한 공간을 크게 늘려야 할 시점이지만 교실 확보를 위해 이들 공간을 오히려 없애고 있다" 고 꼬집었다.

◇ 무리한 학교증축 = 대구.경북교육청은 10월 중순까지 학교별로 건물 신.증축에 따른 설계를 마치고 착공해 내년 2월말까지 완공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교사 신.증축의 경우 공기가 1년 가까이 되지만 4개월만에 완공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겨울철 콘크리트작업을 해야 하는 탓에 부실공사도 우려된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교사 신.증축을 겨울철에 그것도 4개월만에 끝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며 "공기를 맞추기도 어렵지만 부실 가능성이 크다" 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학급당 인원 줄이기의 일정을 늦추거나 학교 시설투자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 교육계의 주장이다.

교육청 관계자들은 "유럽의 경우 운동장이 없는 학교도 많다" 며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년 3월엔 학급당 인원을 계획대로 줄일 방침" 이라고 강행의사를 밝혔다.

정부의 교육여건개선계획에 따라 대구는 50개 고교에서 2백96실, 경북지역은 64개 학교에서 2백40실의 교실을 새로 짓기로 했다.

대구.구미 = 송의호.홍권삼.황선윤<hongg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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