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 세 차례 독대 … 2002년엔 딱 한 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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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12년 야권 후보 단일화는 10년 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보다 진통이 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론조사만으로 단일화를 마무리 지었다. 당시도 협상 교착과 대화 재개가 반복되는 우여곡절은 있었다. 그때마다 두 후보는 단일화를 해야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정치적 현실과 일정 부분은 룰 협상에서 원하는 방식을 양보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 사이에서 고심했다.

 하지만 당시의 갈등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보다 작아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노·정 후보 측은 협상팀이 2002년 11월 9일 처음 만난 뒤 보름 만인 24일 밤에 단일 후보를 결정했다. 보름 정도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 과정에서 후보 독대는 단 한 번이었고, 그 자리에서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여론조사’라는 합의점을 찾았다. 협상팀이 한 차례 교체되는 홍역을 겪었지만 두 후보가 직접 나서 공방을 벌이는 일은 없었다.

 문·안 후보는 지난 11월 6일 처음 독대해 단일화에 합의했다. 그날 이후 22일 현재 17일째다. 중간에 협상은 닷새나 중단됐다. 22일 두 후보가 단일화 선언 이후 세 번째 독대를 했지만 “한 걸음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문·안 후보 측 브리핑)”고 한다. 후보들끼리 직접 협상을 벌이고 이 문제로 공방을 벌이는 것도 2002년과 다른 점이다.

 단일화 협상 중단 사태 당시 안 후보는 “문 후보가 잘 모르는 일이 (캠프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상대의 리더십을 문제 삼았고, 문 후보는 “(참모들이) 상황을 과장해 안 후보에게 보고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민주당의 당시 이해찬 대표를 겨냥해 ‘충치’라고 표현했고, 문 후보 측의 한 공동선대위원장은 “김정일이 원하는 게 뭔지만 알면 문제가 다 풀린다”고까지 했다.

 단일화 논의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10년전에 비해 협상타결이 순조로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두 후보도 스스로 한결같이 2002년의 단일화를 빗대 “정치공학적인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세력과 세력의 결합까지 아우를 수 있는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내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하지만 갈등은 10년 전보다 더 심하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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