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외환위기의 상처는 왜 서민들에게만 남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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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위문희
경제부문 기자

금융권 전체가 구조조정 회오리에 휘말렸던 1998년 초, 당시 국민은행 행원이던 김예균(53)씨는 장롱을 뒤져 금 열한 돈(41.25g)을 마련했다. 아이 돌반지와 아내의 목걸이까지 남김없이 꺼냈다. “외화가 부족하니 금이라도 모아 팔자”는 금모으기운동에 동참했다. 그해 3월까지 모두 349만 명이 225t의 금을 내놨다. 이 중 196t을 수출해 정부는 18억2000만 달러를 마련했다. 그런 국민의 정성이 3년 만에 나라를 되살리는 밑거름이 됐다.

 같은 해 말 김씨는 은행을 나왔다. 2700여 명의 명예퇴직 행렬에 합류한 것이다. 지금 서울 인헌동에 치킨집을 열기까지 세 번의 실패를 겪었다. 아파트를 날리고도 1000만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그는 인터뷰 조건으로 “치킨집 상호 ‘더치킨’을 명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렇게라도 살아야겠다”고 했다.

 김씨뿐이 아니다. 일곱 번 이직 끝에 겨우 자리를 잡은 김동준(39)씨, 일반 회사 취업을 포기했다는 안태호(31)씨, 한 번에 세 가지 직업을 병행하고 있는 김창환(52)씨…. 지난 15년간 외환위기의 짐을 이고 살아온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한 서민금융 창구 담당자는 “40대 후반 이상 영세 자영업자는 대부분 외환위기 때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상대적으로 정부·기업은 형편이 낫다. 정부는 상처를 다 회복했다. 올 9월,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로 상향 조정하자 정부는 축제 분위기였다. 한 달 새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일제히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계단씩 올렸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MB 정권의 숙원 중 하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당시 재정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외환위기 전 한국의 최고 등급을 15년 만에 회복했다. 외환위기로 인한 ‘낙인 효과’에서 완벽하게 탈피했다”고 썼다.

 대기업은 어떤가. 살아남은 기업들에 외환위기는 더 이상 잊고 싶은 악몽이 아니다. 이들 대부분이 외환위기를 거치며 강하고 튼튼해졌다. 빚을 줄이고 회계를 투명하게 했으며 체질을 바꿨다. 요즘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대기업의 성공 신화는 외환위기를 통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외환위기의 상처는 서민들에게만 더 아프고 짙게 남은 셈이다. 구조조정을 말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A씨, 금을 팔아서라도 외화를 끌어오자며 장롱을 뒤졌던 B씨가 그들이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서민 A·B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희생해 나라와 기업을 살렸건만, 그런데 내 삶은 왜 살아나지 않는가?” 이제 정부와 기업이 그 질문에 답할 때다.

위문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