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잘 극복” 73% … “양극화는 더 악화” 9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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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은 외환위기를 비교적 잘 이겨 냈다. 하지만 내 삶은 더 팍팍해졌다. 요즘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살기가 어렵다’.

 대한민국 성인의 상당수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한국리서치와 함께 전국 만 25~57세 남녀 12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10명 중 7명(72.6%)은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잘 극복했다’고 응답했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 대응에 대한 평가는 평균 66점이었다. 낙제점을 면한 것이다. 현재 위기에 대한 정부 대응은 45점을 받는 데 그쳤다. 또 절반(48.5%)가량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각각의 경제주체가 겪은 상황에 대한 생각은 엇갈렸다. 열에 여덟꼴(80.8%)로 대기업은 더 기업하기 좋아졌다고 응답했지만, 중소기업의 상황이 나아졌다는 대답은 열에 하나(11.4%)에 그쳤다. 서민의 삶이 외환위기 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8.8%로 10명 중 한 명이 채 안 됐다. 중앙대 신광영(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이 97년 외환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것은 지표상으로 한국이 빌린 돈을 갚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덩치가 작은 기업과 개인은 더욱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 외환위기에 대해 강한 피해의식을 보였다. 응답자의 92.6%가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국민의 희생이 있었다’고 답했다. 양극화가 더 심화됐다는 의견도 89.7%에 달했다. 양원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장은 “정부와 기업이 체질을 강화하는 동안 개인은 끊임없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돼 왔다”며 “복지 등의 사회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의 희생은 매우 컸다”고 분석했다.

 현 경제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컸다. 응답자 대부분(93.8%)이 ‘현재는 심각한 경제위기’라고 답했다. ‘외환위기보다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63.6%였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소위 ‘IMF(국제통화기금) 세대’(만 35~48세)는 2명 중 한 명(49.5%)이 ‘지금 위기가 더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는 가계부채(40%)와 물가 상승(32.5%), 일자리 부족(32.3%)이 꼽혔다(복수응답).

중앙일보·한국리서치 공동기획 특별취재팀=임미진·김혜미·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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