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명분 살리며 ‘명퇴’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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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는 18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담담한 표정으로 준비한 회견문을 읽어나갔다.

 “오직 정권교체와 단일화를 위한 하나의 밀알이 되고자 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뼈 있는 말’도 담았다. “많은 분이 사퇴 요구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말렸다”고 했다. 이 대표는 회견장에선 읽지 않았지만 배포된 회견문에 “민주당을 구태 정당으로 지목하고 이 사람들을 청산 대상으로 모는 것은 두 전직 대통령(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모욕”이라며 “안철수 후보도 이분들을 존경한다고 하신 바 그 마음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하는 대목을 담았다. 그는 기자들과 별도의 질의응답은 하지 않고 회견을 끝냈다.

 지난 6·9 전대에서 선출된 이 대표의 거취는 처음엔 ‘당내 쇄신’의 문제였으나 점차 ‘야권 전체’의 문제로 확대돼 왔다. 당 비주류의 퇴진 요구가 어느덧 단일화 협상 재개의 전제로까지 비화됐다. 특히 11월 들어 문 후보 선대위 새로운정치위원회의 사퇴 요구(1일), 김한길 의원의 최고위원직 사퇴 및 지도부 퇴진 압박(2일)이 이어졌다. 그러나 파상공세에도 이 대표는 퇴진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문 후보도 이 대표를 감쌌다. 퇴진 압박을 받던 이 대표와 문 후보는 2일 단둘이 회동했으나 이 자리에서도 그의 거취는 퇴진 유보로 결론 났다.

 그러다 안 후보 측이 16일 다시 이 대표의 거취를 단일화 협상과 연계시키자 결국 취임 162일 만에 이 대표 체제는 막을 내리게 됐다.

 그러나 이 대표로선 압박을 받는 동안 나름 퇴진 시기를 저울질하며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 인상이다.

 일단 그는 정치적 반대파의 압박에 밀리지 않고, 자진 사퇴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또 자신의 퇴진이 꽉 막힌 단일화 협상을 재개시키는 데 명분으로 작용하게 했다.

 사실 이 대표 퇴진론이 거론되는 동안 문 후보 측은 물론 안 후보 주변에서도 “이 대표가 언제 물러나는 게 가장 적기일지 타이밍을 보고 있다. 아마 문 후보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극적인 순간을 보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우상호 공보단장은 18일 “언제든 (이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총사퇴한다는 입장이 일찍부터 내부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설명대로 이 대표는 결국 ‘최후의 순간’에 사퇴 카드를 던졌다. 이 대표가 당에 사퇴 의사를 알린 건 17일 저녁이었다고 한다. 문 후보가 안 후보 측이 요구한 이 대표의 퇴진 요구를 일축하고 협상이 결렬 일보직전까지 몰리던 상황에서였다. 이 대표는 문 후보에게도 전화로 사의를 알렸고, 문 후보는 “어려운 결심을 하셨다. 감사드린다. 결단을 배경으로 반드시 단일화에 성공해 보답하겠다”고 말했다고 우 단장은 밝혔다. 이 대표는 사퇴 이후 지역구인 충청권에서 ‘백의종군’ 형태로 선거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 대표의 거취 논란은 ‘단일화 경선 이후’의 헤게모니(주도권) 다툼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단일후보로 누가 되건 혹시 양측이 신당창당으로 나아갈 경우 안 후보 측근이나 민주당 내 비주류 측이 장래의 당권 경쟁자인 이 대표를 견제하려 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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