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 "강한 달러 포기하라"

중앙일보

입력

미국 제조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강한 달러' 정책에 대해 공식 반대성명까지 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미제조업자협회(NAM)등 8개 제조업 단체들은 23일(현지시간) 미 재무부에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다른 업종의 단체들에 자신들의 반대캠페인에 동참할 것도 촉구했다.

NAM의 제리 재시노스키 회장은 "달러화 가치가 최근 수년간 주요 외국 통화에 대해 30%나 올랐다" 며 "이는 미국 수출업체에 30%의 관세를 매기는 것과 똑같은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한 달러로 인해 미국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서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됐으며, 이는 대규모 감원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폴 오닐 재무장관 등 당국자들은 재계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달러정책을 바꿀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서면 미국 기업의 수출에는 도움이 되지만 자칫 미국 시장에 투자된 국제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간이 갈수록 미 정부가 강한 달러 정책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그동안 분기마다 1천억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적자를 보면서 부족한 돈은 외국인 투자유치로 메워왔다. 하지만 미국의 경기부진이 예상보다 심각해지자 외자유치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보고서에서 "경상수지 적자 확대로 달러화가 급락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고 경고한 바 있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으로선 당선에 많은 도움을 준 기업들의 요구를 언제까지나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읽은 국제 외환시장에선 이달 들어 달러화 약세 현상이 이미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4일에도 달러화는 도쿄(東京)시장에서 달러당 1백19엔선으로 밀렸다. 한달 전만 해도 1백25엔선을 넘어섰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약세다.

한편 달러 약세는 원화 및 엔화 강세로 이어져 한국.일본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24일 최근의 엔화 강세현상에 대해 실물경제 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장개입을 시사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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