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중요하지 않아, 시장서 트렌드 배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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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인동 우일타운 원단상가에 있는 사무실에 선 김현숙(왼쪽)·김진영 비트윈에이앤비 공동대표. [박종근 기자]

“안단(안에 대는 옷감)은 빨간색으로 해주세요.”

 “안단이 뭐야, 밑까시지. 이런 말도 모르면서 무슨 옷을 만든다고 와서 이래.”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장은 용어 하나부터 철저하게 달랐다고 했다. “애들이 귀찮게 한다”며 화를 내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럴 때마다 오기가 생겼다. “언니” “삼촌”이라며 더 살갑게 굴었다. 양손엔 항상 원단과 의류 샘플이 가득 담긴 검은색 ‘시장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이렇게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6개월을 보냈다.

 올 1월 패스트패션 브랜드 ‘비트윈에이앤비(Between A and B)’를 만든 김진영(27)·김현숙(29) 공동대표 얘기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롯데백화점이 젊은 디자이너 발굴을 위해 주최한 ‘제1회 패션브랜드 공모전’ 여성복 부문에서 4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됐다. 롯데백화점 박찬욱 영패션 상품기획자(CMD)는 “20대 초반이라는 명확한 타깃 고객층을 갖고 있었고, 금속 등 다양한 소재를 의상에 활용한 게 독특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오는 16일부터 일주일간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 임시 매장을 열고 판매를 한다. 반응이 좋으면 내년 봄·여름(SS) 시즌에 백화점 내 단독매장을 연다. 박 CMD는 “입점하면 ‘최연소 사장님’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10년 처음 만났다. 김진영 대표가 홍익대 대학원 의상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일 때다. 당시 김현숙 대표는 미국 패스트패션 브랜드 파파야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우연히 친구 과제를 도와주러 대학원에 갔다가 김진영 대표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코드가 맞아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곧 창업을 결심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온라인 쇼핑몰이 아닌, 직접 디자인과 제작·생산까지 총괄하는 ‘내 브랜드’ ‘내 회사’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김 대표는 다니던 회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막상 창업을 하려니 막막했다. 그는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의류 생산과정을 하나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직접 부딪치는 거였다. 현장에서 배우기 위해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에서 디자이너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차렸다. 처음엔 사무실을 얻을 돈조차 없었다.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두타) 지하의 쓰레기 소각장 옆 공터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사무실이었다. 김진영 대표는 “학벌은 아무 소용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더라”며 “사람들의 취향과 트렌드를 현장에서 제대로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인맥도 쌓고 의류 생산과정을 알겠다 싶을 즈음 또 다른 벽이 가로막았다. 디자인학과에서는 한 번도 배우지 못한 마케팅·세법·특허 같은 것들이었다. 이번엔 중소기업청 여성 창업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3개월간 원가계산·홍보·회계 등 실무적인 부분을 배웠다. 창업지원 대출도 받을 수 있었다. 중간에 김진영 대표가 ‘두타벤처디자이너 콘퍼런스’에서 장려상을 받아 1년간 두타에서 매장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김진영 대표는 “대부분의 신진 디자이너가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만 내세우며 사업적인 부분을 간과하기 때문”이라며 “디자이너는 아티스트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트윈에이앤비는 현재 스파이시칼라·에이랜드 같은 의류편집 매장 15곳에 제품을 판다. 올 3월 1500만원(3월)이었던 매출은 현재 5000만원으로 늘었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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