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실형 선고 받고도 “못 물러난다” 버티는 배구연맹 사무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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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스포츠부문 기자

한국배구연맹(KOVO) 박상설(59) 사무총장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자리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용기 있는 결단이다.

 박 총장은 2009년 대우자동차판매 대표이사 시절 직원 176명에게 8억여원의 임금과 퇴직금을 미지불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16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KOVO 정관(제3장 제14조)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임원이 될 수 없다’고 돼 있다. 박 총장은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날 때까진 임원직 유지가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박 총장이 항소 기한까지 항소장을 제출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박 총장은 1심 판결이 확정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자’가 됐다. 뒤늦게 상소권 회복 신청을 냈지만 이마저 기각당했다. 정관에 따라 더 이상 임원직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자 박 총장은 궤변을 들고 나왔다. 그는 12일 본지와 통화에서 “착오가 있었다. 상소권 회복 신청을 다시 할 것”이라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헌법소원이라도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관에 대한 유권해석도 명확히 내려진 게 없다. (그 사건은) KOVO 사무총장 업무와 관련성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주장엔 설득력이 있을까.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다르게 보는 것 같다. 문체부 체육진흥과 관계자는 “정관에는 단서조항이 없다. (박 총장의 주장처럼)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정관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건 무리”라고 덧붙였다.

 혼자 목소리를 높인다고 상식과 규정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는 4년 넘게 사무총장으로 장기 집권했다. 공과 과가 두루 있었지만 프로배구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을 수포로 돌리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가지. 바로 ‘아름다운 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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