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박근혜 만난 뒤 “이제 난 할일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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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를 규제할 것인지를 놓고 갈등을 벌여온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11일 긴급회동을 했다. 박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는 “박 후보가 중앙선거대책위 회의를 주재하기 직전 한 시간 정도 김 위원장을 만났다”고 말했다. 이 자리엔 황우여 대표와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서병수 당무조정본부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등도 배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회동 결과에 대해선 말이 엇갈렸다.

 당 핵심 관계자는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선 박 후보가 계속 말해온 대로 규제를 하지 않는 쪽으로 부드럽게 정리됐고, 김 위원장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그간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지 않을 경우엔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박 후보의 생각에 동의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박 후보도 기자들과 만나 “(경제민주화 공약은) 이제 정리가 됐다”고 했고, 선대위 회의 때도 “예전부터 일관되게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되 기존 순환출자는 그대로 두겠다고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 측 관계자는 “논의가 잘 안 된 것으로 안다.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뭔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말을 물가에까지는 끌고 갈 순 있지만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 대선에서 이기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후보가 판단할 일”이라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불거진 ‘결별설’에 대해선 “사퇴를 하거나 하진 않겠지만 이제 사실상 (내가 할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초 경제민주화 노선을 놓고 이한구 원내대표와 갈등을 빚었을 때 출근을 거부한 적이 있다.

 대선을 38일 남겨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놓고 대선 후보와 공약 책임자 사이에 잡음이 계속되자 당 내에선 김 위원장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지난 9일 방송 인터뷰에서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유약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주변에 재계와 연관된 사람이 많으니까, 로비도 있고 하니까…”라고 발언한 데 대해 비판이 집중되고 있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11일 “박 후보가 재벌 로비에 휘둘릴 사람이냐. 선대위원 다수가 김 위원장의 ‘로비 발언’에 불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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