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패 가득 찬 정치로부터 경제 풀어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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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04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오바마’와 ‘시진핑’의 시대가 열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지 이틀 뒤인 8일 중국에선 시진핑 부주석 등 5세대 지도부를 선출하는 18차 전국대표대회(18大)가 개막했다. 오바마가 내년 1월 4년의 재선 임기를 시작하고, 시진핑이 3월 국가 주석직에 오르면 오바마-시진핑 시대의 수명은 2017년 1월까지 4년이다.
두 사람은 올 2월 백악관에서 상견례를 했다. 오바마가 현직 대통령인 반면 시진핑은 부주석이라는 불평등한 자리였다. 하지만 시진핑은 예는 갖추되 할 말을

[오바마-시진핑 시대를 말한다] 워싱턴의 시각

다해 워싱턴 정가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역 얘기가 한 예였다.

“힘이 커진 만큼 책임도 늘어난다. 모든 나라가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동일한 규칙을 바탕으로 협력해야 한다.”(오바마)
“아태 지역의 평화와 번영은 양국 이익에도 중요한 문제다. 보호무역주의가 아닌 대화와 협력으로 양국 갈등을 해소할 수 있기 바란다.”(시진핑)
중국에서 18대가 열리는 것과 때맞춰 미국 내 중국 전문가들은 ‘오바마-시진핑 시대’의 과제와 전망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중심축 이동 vs 反접근
오바마는 올 1월 미국의 전략적 중심축을 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새 국방전략을 발표했다. 아태 지역을 넘어 급부상하는 중국을 더 이상 두고볼 수만은 없다는 전략적 배경을 깔고 있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전략’은 중국으로부터 ‘반접근(anti-access)ㆍ접근 거부(area denial) 전략’이란 반발을 낳고 있다.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대니얼 서워 교수는 “취임 초 오바마는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개선 등 중동정책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시아 중시 외교는 오바마 입장에선 중동에서 발을 빼는 의미도 있다”고 진단했다. 아시아 중시 외교가 일회성이 아니라 미국 외교의 노선 변화라는 얘기다.

시진핑은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 전략을 중국에 대한 직접 견제라고 경계한다. 그런 만큼 아시아의 맹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과의 긴장 관계는 불가피하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조너선 폴락 선임연구원은 “재선 대통령인 오바마는 집권 2기에 중국의 시진핑과 더 복잡한 어젠다를 놓고 충돌할 수 있다”며 “현재 양측은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을 놓고 서로의 전략적 의도에 대해 의심을 키우고 있는 관계”라고 분석했다.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이론가인 에런 프리드버그 프린스턴대 교수는 저서 『패권 경쟁, 누가 아시아를 지배할 것인가』에서 “양국의 정치 이념과 시스템의 차이가 커지고 있는데 양국 간 힘의 격차는 줄어들고 있어 양국은 깨지기 쉬운 불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시라이 사건, 中 정치 취약점 드러내
리처드 솔로몬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휴대전화 사용 인구가 4억 명에 달하는 중국에선 앞으로 경제 발전과 정치 상황의 불일치에서 오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시진핑의 5세대 리더에겐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격변사태가 없을 경우 중국의 향후 10년을 이끌고 나가야 할 시진핑에게 리더십 안정을 위해 정치개혁은 알파와 오메가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부정부패를 없애고 민주적인 당내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정치개혁 없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경제력을 더 이상 감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 정치의 취약점을 단번에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물론 사건이 불거진 내막에는 권력투쟁적 요소가 섞여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수술의 여지가 더 크다는 게 미국 내 중국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존 손턴 중국센터’ 소장인 쳉리는 “시진핑 시대에 정치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는 시기가 정치개혁을 단행해야 할 좋은 기회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들었다. 우선 시진핑 등 5세대 리더십이 착근하기 위해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치개혁이야말로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모을 수 있는 신선한 소재”라는 게 쳉리의 주장이다. 둘째 이유는 최근 주춤거리고 있는 경제 발전 속도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선 부패로 가득 찬 정치로부터 경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쳉리는 “정치개혁 없이는 수출 주도형 경제에서 내수 주도형, 혁신 주도형 경제로의 이행이 어렵다”고 말했다. 셋째 이유는 더 절박하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나 저항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개혁은 필수라는 것이다. 그는 “5세대 지도자들에겐 지금 기득권의 일부를 포기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체질을 강화하든지, 아니면 역사에서 사라질지의 선택이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중국의 정치개혁을 지지하며 요구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들어 이런 요구는 한층 노골적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케네스 리버셜 선임연구원은 “시진핑의 중국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미국 등 주변국들의 견제에 맞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개혁을 뒤로 돌릴 수 없다”고 진단했다.

“군사력 재배치보다 무역 불균형 중요”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1985년 6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950억 달러로 폭증했다. 올 들어서도 8월 한 달간 미국의 무역적자는 442억 달러인데 그중 65%인 287억 달러가 대중 교역에서 발생했다. 오바마-시진핑 시대의 ‘궁합’을 좌우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무역 갈등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더글러스 팔 아시아담당 부회장은 “군사력 재배치 문제보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의 교역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적어도 경제에선 미국과 중국이 이제 서로를 떼밀 수 없을 만큼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점이다. 미 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90% 이상이 중국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은 중국에 1000억 달러 이상의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했다.

리버셜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불공정 무역 관행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늘리고, 경제를 더 개방하는 등의 조치가 미국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서로 필요한 개혁 조치를 더 과감하게 실행할수록 긴장 관계도 그만큼 줄어드는 관계”라고 주장했다. 쳉리 소장은 “선거 내내 중국을 비판해온 공화당보다는 오바마가 재선된 게 중국으로선 다행일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의 재선캠프에서 외교문제를 조언해온 미셸 플루니 전 국방차관은 “오바마는 2기에도 중국과의 관계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며 “우리에겐 중국이란 나라가 경제적으로나 지역 안보를 위해서나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상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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