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안 웃을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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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27면

돌아가신 아버지는 저녁식사 때마다 가족들에게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우리 가족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버지의 말씀에 웃고 울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를 기억에 떠올리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삶과 믿음

아버지는 얼굴에 피어나는 편안하고 그윽한 미소로 언제나 보는 이의 마음까지 평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믿었던 친구와 친척으로 인해 빚을 떠안기도 했고,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여러 번 겪기도 했다. 그럴 때도 별로 화를 내거나 낙담하지 않으셨다. 고백하건대 난 아버지의 무한 긍정과 낙천적인 성격을 때론 이해하기 어려웠고 때론 답답해했다.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건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남겨진 어머니와 우리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남겨줬다. 삶의 어떤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큰 유산인가.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화를 내면 한 번 늙게 된다(一笑一少 一怒一老)는 말이 있다. 웃으면 복이 오고, 찡그린 얼굴은 날아가는 벌이 쏜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웃음에 대한 격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쾌한 웃음은 건강과 행복을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자꾸 웃음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이 팍팍하고 고단하다는 증거다. 실제로 길거리와 버스·지하철 등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은 대부분 표정이 없다. 웃음이 사라지는 것과 비례해 화병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웃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함이 많다. 웃음은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혈압을 낮춘다. 통증을 줄여주고 스트레스와 분노·긴장을 완화시킨다. 많이 웃으면 면역력도 증가하고 성인병에 대한 저항력도 높아진다고 한다. 웃음의 경제적 효과를 측정한다면 분명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웃음이 우리네 삶 속에서 자꾸만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나이를 먹으면서 웃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약 억지로라도 웃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뇌는 진짜 웃음과 거짓 웃음을 구분하지 못하며 억지로 웃을 때도 진짜로 신나게 웃을 때와 마찬가지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한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이 맞는 셈이다. 우리가 크고 쾌활하게 웃을 때 몸의 650개 근육 중 231개가 움직인다고 하니 활짝 웃는 건 좋은 운동임에도 틀림없다.

기쁘게 웃는 얼굴은 주위를 환하게 하고 빛나게 한다. 항상 밝게 웃는 사람은 그 마음도 바르고 맑게 가꾸는 사람일 것이다. 기쁨에 가득 찬 환한 얼굴은 인간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일의 성공에도 보탬이 된다. 기쁘게 웃으며 사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한 셈이다. 웃음도 습관이고 훈련이 필요하다. 웃음으로 주변 이들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하고 건강도 챙기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오늘부터 억지로라도 자꾸 웃어볼 일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되뇌면서.



허영엽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문화홍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서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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