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 92명 복직한 첫날 그들을 맞은건 텅 빈 도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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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5m의 ‘85호 크레인’(사진)에서 309일간을 버틴 초유의 고공농성, 주말이면 전국에서 1만여 명의 동조 시위대를 부산 도심으로 실어나른 ‘희망버스’, 이런 상황을 뒤로하고 해외에 장기 체류한 최고경영자. 단 한 척도 수주를 못해 텅 빈 도크. 노사 분규의 틀을 넘어 보수·진보의 진영 간 갈등으로까지 치달았던 한진중공업 사태의 단면들이다.

 사태의 촉발제가 됐던 170명의 정리해고자 가운데 복직 대상인 92명이 9일 다시 한진중공업에 출근했다. 정치권의 중재로 파업이 해결된 지 꼭 1년 만이다. 당시의 노사 합의사항이 지켜진 것이다. 실업자와 일용직을 전전한 92명의 지난 1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9개월간의 해고 철회 투쟁에선 이겼지만, 투쟁이 끝난 뒤 그들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사이 해고 근로자들의 마음속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해고자 정기현(52)씨는 “아무리 일이 힘들고 불만스러워도 매일 아침 출근할 일터가 있다는 사실의 행복감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돌아온 회사는 아직 한진중공업 사태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감이 없어 동료들은 유급휴직을 떠났다. 복직 근로자 92명도 출근의 기쁨은 단 하루밖에 누리지 못했다. 그들 역시 이튿날부터 바로 유급휴직에 들어가야 할 처지다. 애타게 기다린 복직이 우울한 이유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남긴 건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들은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관련기사 이어보기

부산=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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