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 92명 복직 다음날 휴직? 무슨일이…

중앙일보

입력 2012.11.10 00:44

업데이트 2012.11.1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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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장기 파업 사태가 해결된 지 꼭 1년을 맞는 9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4번 도크가 일감이 없어 텅 비어 있다. 장기 파업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연간 5∼6척의 컨테이너선과 LNG선을 만드는 회사의 주력 도크였다. [송봉근 기자]

천병호(51·경남 김해시 내동)씨는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해고노동자다. 입사 32년째인 지난해 2월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의 방에는 한진중공업의 마크가 선명한 작업복 5벌이 깨끗하게 세탁된 채 종이 박스에 담겨 있다. 신발장 한쪽에는 잘 닦인 갈색 안전화도 2켤레 놓여 있다. ‘언젠가는 회사에 복직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그와 가족들이 늘 출근 준비를 해둔 것이다.

 그렇게 꿈꿔왔던 복직이 9일 이뤄졌다. 극한으로 치달았던 한진중공업 사태가 해결된 지 꼭 1년 만이다. 천씨는 한진중공업에 다닌 30여 년 중 10여 년 동안 노조 복지부장 등 노조간부를 지냈다. 정리해고자 170명 속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것도 노조간부 경력 때문이라고 그는 믿었다. 함께 해고된 다른 동료들도 대부분 노조간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복직투쟁의 최선봉에 섰다. 정치권의 중재로 한진중공업 사태는 지난해 11월 어렵사리 타결됐다. 그러나 천씨가 설 자리는 없었다. 회사 측으로부터 ‘1년 안에 복직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당장의 생계를 이어가는 게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는 일자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지게차 운전, 기계 수리, 파이프 배관에서부터 대파 가공 공장에서 박스를 나르거나 배달을 하는 막일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지난달에는 통영에서 일하느라 가족과도 떨어져 지냈다. 일당 8만~9만원에 비정규직 신분이었다. ‘내가 여기서 지금 뭐하고 있나’라는 자괴감에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 처음엔 회사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배신감에 잠 못 이룬 적도 많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회사 저 회사 돌아다녀 보니까 그래도 내가 다니던 회사만큼 좋은 회사가 없었다. 청춘을 다 바친 회사에서 꼭 정년을 맞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버텼다.”

 김경춘(52·85년 입사)씨는 특히 감회가 남다르다. 이번이 두 번째 재입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노조 부위원장 시절이던 1996년 불법 파업을 주도해 정리해고 됐다가 2003년 가까스로 복직한 경력이 있다. 그런 그에게 지난달 10일 재취업 통지서가 날아왔다. 반갑고도 놀라웠다. 김씨는 “두 차례 해고됐는데 회사가 약속을 지키고 다시 나를 복직시켜 줄 것이라곤 솔직히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리해고자들은 천씨나 김씨처럼 노조간부 출신들이 대다수였다.

 해고자들의 지난 1년은 고통스러웠다. 대부분 공사장 막노동이나 일용직으로 전전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도 그들의 손에는 월 100만~150만원 정도의 돈만 쥐어졌다. 회사 다닐 때 연봉(4000만~6000만원)의 절반도 안 됐다. 전업주부였던 아내들도 식당이나 공사장으로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자녀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했다.

 그런 과정을 겪는 동안 조금씩 생각이 바뀌어 갔다. 많은 해고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정기현(52·85년 입사)씨는 “아침마다 출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해고 기간에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회사가 잘돼야 노동자도 있고 요구도 할 수 있으니까 회사가 하루빨리 정상화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회사에 남아 있던 다른 노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극한투쟁이 막을 내린 이후 ‘우리에게 돌아온 게 과연 무엇인가’란 허탈감에 빠진 노조원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1월 강성의 민주노총 한진중공업지회 대신 ‘노사 상생 협력’을 내세운 온건 노선의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말 705명이었던 옛 노조 조합원 중 현재 561명이 새 노조로 소속을 옮겼다. 김상욱(49) 위원장은 “올 초 17명의 발기인이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자 일주일 만에 300여 명의 조합원들이 가입했다. 오랫동안 강력한 투쟁으로 조합원들 사이에 얻은 것도 없고 회사는 어려워졌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지금까지 새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 중 기존 노조로 넘어간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새 노조와 회사는 지난달에는 2008년 이후 4년 만에 임금·단체교섭 합의도 이끌어냈다. 기본급 15% 인상, 생활안정지원금 1200만원 지급 등의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참여자(510명)의 82.7%(422명)가 찬성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이 정상화되기까지는 멀기만 하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 해군 군함 등 특수선 3척을 제외하고는 단 한 척도 계약을 따낸 게 없다. 정철상 상무는 “장기파업의 여파로 선주들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아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9일 재입사한 직원 92명은 현장에 투입되지 못하고 다음 날부터 곧바로 휴직에 들어가야 한다. 다만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는 ‘유급’이란 게 지난 1년과 달라진 점이다. 다른 500여 명 직원들도 순환휴직을 하고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복직 첫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천씨가 고이 모셔둔 작업복 상자를 끝내 열지 않은 이유다. 회사 측 설명으로는 내년 상반기쯤에야 특수선 분야에 투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그때쯤 천씨는 회사 마크가 아로새겨진 작업복을 다시 꺼내 입을 요량이다.

부산=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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