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명예의 전당 (26) - 레지 잭슨 (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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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승의 감격이 가시기도 전에, 오클랜드의 '콧수염 갱단(Mustache Gang)'은 태풍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으며, 또한 장차 야구계에 불어닥칠 대변혁의 신호탄이었다.

1974시즌에 리그 방어율과 다승 부문을 휩쓸며 사이영상을 거머쥐었던 투수 캣피시 헌터는, 이 해 월드 시리즈 직전 자신의 계약을 무효화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자신의 연봉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인 5만 달러를 팀이 자신의 생명보험금으로 지불해 주기로 된 계약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잭슨은 이 때에 팀 동료 헌터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절대 물러서지 말기 바란다."

결국 연봉 조정(arbitration)이 실시되었고, 조정관 피터 자이츠는 헌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터가 자유 계약 선수로 풀리게 된 것이다. 그러자 구단들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달려들었고, 결국 양키스가 그에게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히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제 구단주들은 자유 계약 제도를 확립시키라는 선수들의 요구를 더 이상 묵살할 수 없게 되었다. 메이저 리그에는 1880년대 이래 '보유 조항(reverse clause)'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한 선수가 특정 팀에 속하게 되면 그 팀이 선수에 대한 보유권을 계속 갖는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항에 따라, 선수들은 일단 입단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팀을 선택할 권리는 거의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 조항은 위기를 맞고 있었다. 애슬레틱스를 지배해 온 핀리 역시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애슬레틱스는 헌터가 없는 상태에서 1975시즌을 보내야 했지만, 지구 수위는 지켰다. 잭슨은 36홈런을 날려, 밀워키 브루어스의 조지 스캇와 함께 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그러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는 애슬레틱스를 누르고 아메리칸 리그의 새 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하여, 애슬레틱스는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핀리는 자유 계약 제도가 실시될 경우,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스타들을 계속 보유하려면 엄청난 금전적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1975시즌 중 발생한 앤디 메서스미스의 자유 계약 선언 사건은, 이러한 일이 목전에 다가왔으며 보유 조항이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였다. 결국 핀리는 팀의 간판이었던 잭슨을 트레이드할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 시기에,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선수를 물색하고 있었다. 특히 오리올스는 좌타자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브룩스 로빈슨을 대체할 유망주로 꼽히고 있던 3루수 덕 디신시스를 뉴욕 메츠의 외야수 러스티 스톱과 바꾸는 문제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리올스가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타이거스가 투수 미키 롤리치를 내주고 스톱을 데려갔다.

오리올스의 신임 단장 행크 피터스는, 스프링 캠프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6년 3월 중순까지도 타 구단과 접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잭슨을 트레이드할 생각을 하고 있던 핀리는, 피터스와 접촉하게 되자 당장 제의를 했다. 핀리는 전년도에 20승을 거둔 마이크 토레스와 오리올스 타선의 핵심이었던 돈 베일러를 요구했지만, 피터스는 흔쾌히 응했다.

결국 4월 2일, 트레이드가 최종적으로 성사되었다. 그 내용은 잭슨과 켄 홀츠먼, 빌 밴 바멀이 오리올스로 가고 베일러와 토레스, 폴 미철이 애슬레틱스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이었다.

시즌 초부터 잭슨은 계약 문제로 팀과 마찰을 일으켰다. 그의 에이전트는 5~6년 동안 3백만 달러 이상의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했고, 피터스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잭슨은 결국 20만 달러에 1년 계약을 맺은 채로 1976시즌을 보냈다.

더구나, 잭슨은 스프링 캠프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오리올스에 합류했다. 몸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상태로 바로 시즌을 소화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시즌 초반에 한 달 정도 결장해야 했다.

또한 잭슨은 항상 팀 동료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는 클럽하우스에서 큰 소리로 떠들기를 좋아했고, 기존의 팀 멤버들에게 조롱에 가까운 말을 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더구나 얼 위버 감독과도 마찰을 일으켰다.

어느 날, 잭슨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일이 발생하였다. 당시 오리올스 선수들은 원정 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탈 때마다 정장 차림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잭슨은 이 날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로 비행기에 올랐다. 위버는 잭슨에게 넥타이를 착용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잭슨의 답변은 이러했다. "타이가 없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위버는 이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없으면 찾든지 내리든지 하란 말이야. 네가 타이를 매지 않으면 비행기를 이륙시키지 않을 테니."

위버가 고집을 꺾지 않자, 포수 데이브 덩컨은 카우보이들이 착용하는 된 타이를 잭슨에게 주었다. 잭슨은 그 타이를 매고 위버에게 갔다. "이제 됐나요?"

위버는 말했다. "이봐. 그게 타이란 말이야?"

잭슨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물론이죠. 서부식 타이이죠." 결국 위버는 잭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가 이 해에 보여 준 기량은 탁월했다. 그는 4월 내내 결장하였고 시즌 중반까지 극심한 부진을 보였으나, 후반기에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결국 그는 27홈런을 기록하여 양키스의 3루수 그레익 네틀스에 이어 이 부문 리그 2위에 올랐고, 장타율에서는 리그 수위를 차지하였다. 오리올스는 이 해에 지구 2위에 올랐다.

그러나, 1976시즌이 끝난 뒤 잭슨은 또다시 거취 문제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오프시즌을 실로 떠들썩하게 보낸 끝에, 역사적인 계약의 주인공이 되었다.

(5편에 계속)

※ 명예의 전당 홈으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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