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탄생 20년, '배워야 하나' → '없인 못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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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지 12일로 20년을 맞았다. 업무용으로 소형 컴퓨터가 나온 것은 이보다 앞선 1970년대 말이지만, IBM이 PC라는 용어를 만들고 다른 업체에 기술을 공개해 시장을 늘려나간 것은 이 때부터다.

IBM이 첫 모델 ''5150'' 을 내놓았을 당시 집집마다 이 물건을 쓰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IBM으로서는 소형컴퓨터로 먼저 기세를 올린 애플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더 강했다.

그러나 PC는 불과 20년만에 세상을 뒤바꾸게 된다. 흔히 ''정보화'' 라고 부르는 큰 사회적 변화의 핵심은 PC였다. 특히 인터넷과 접목하면서 경제는 물론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PC없이는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 비약적으로 좋아진 성능〓4. 77㎒의 동작속도와 64KB의 기본메모리를 가졌던 첫 PC에는 인텔의 ''8088'' 칩이 들어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디스크 운영체제(DOS)'' 가 함께 팔렸다. 하드디스크는 없었고 1백60KB의 플로피디스크가 달려 있었다.

반면 가장 최신 제품인 인텔 펜티엄4의 상위 기종은 동작속도가 1.8㎓로 3백80배쯤 빨라졌다. 메모리나 저장장치의 발전은 더욱 눈부셔 대략 1천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보면 된다.

가격을 감안하면 성능의 상승은 더욱 뚜렷하다. 흑백화면을 장착한 첫 PC의 당시 값은 3천달러.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현재의 4천7백달러(약 6백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사용법과 이에 따른 활용도 역시 크게 변했다. 첫 PC를 사용하려면 먼저 DOS디스켓을 넣고 전원을 켠 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게임이나 다른 응용SW를 쓰려면 하나뿐인 디스크 드라이브에서 DOS를 빼내고 다른 디스켓을 넣어야 했다.

만약 컬러모니터와 프린터까지 장만하려면 차 한대값을 호가하던 당시, 이 비싼 기계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몇 줄의 문서를 쓰고 월급명세서를 계산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

윈도처럼 사용자가 편하게 조작할 수 있는 운영체제, 다양하고 풍부한 게임.SW, 특히 인터넷과 연결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감안하면 PC는 말 그대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온 셈이다.

◇ 치열한 경쟁, 누가 승리했나〓PC가 이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한 데는 거대한 시장을 둘러싼 업체들의 경쟁이 한몫했다.

IBM은 이미 자리를 잡아가는 애플을 제압하기 위해 PC의 내부 구조를 공개하고 누구나 이것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많은 업체들이 보다 싸고 성능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시장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곳이 컴팩. ''들고 다닐 수 있는 PC'' 라는 아이디어로 1983년 첫 모델을 출시한 이 회사는 80년대 후반 IBM이 차세대 제품 출시를 망설일 때 재빨리 386급 PC를 발매해 최대 업체로 발돋움한다.

매장에 가서 물건을 사던 개념을 뒤집어 주문생산.배달만으로 영업했던 ''델'' 도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이제 세계 최대의 PC업체로 우뚝 섰다.

그러나 최고의 승자로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를 꼽아야 할 것 같다.

PC 구성의 핵심이 되는 프로세서와 운영체제를 장악한 두 회사는 이후 경쟁업체들보다 늘 한발 앞서는 제품을 내놓고 강력한 마케팅을 통해 거대 IT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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