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인연, 붉은 노을과 ‘노란 낙엽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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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충무교 지나 현충사 진입로에 들어서면 눈부시게 펼쳐지는 풍경과 맞닥뜨리게 된다. 짧은 심호흡을 한 뒤 노랗게 변한 은행나무 길을 달려보자. 가을 풍경을 즐기며 드라이브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코스다. [조영회 기자]

가을 현충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바로 노랗게 변한 은행나무길이다. 지난 2000년에는 국토해양부 주관 ‘아름답고 걷고 싶은 도로’로 선정됐으며 산림청 주관 ‘아름다운 숲’으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곡교천을 끼고 국도를 따라 1.6㎞ 가량 조성돼 있는 길로 1973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350여 그루가 왕복 2차로에 심어지게 됐다. 그 후로 40여 년의 세월 동안 은행나무는 더욱 우람하고 빼곡해졌다. 은행나무 가지는 지붕을 이루어 하늘을 덮었고 긴 터널이 되어 사계절 내내 각각의 색채와 분위기를 자아낸다. 길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곡교천과 어우러져 지나는 이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안겨준다. 왕복 2차로 사이로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 숲길 수변데크는 2010년에 완공됐다.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를 향하는 1.6㎞ 구간에 2m 폭으로 조성됐으며 곡교천과 은행나무 숲길을 감상할 수 있는 쉼터도 만들어져 보행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은행나무 길은 현충사의 단풍을 즐기려는 나들이객과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진 동호회원들의 셔터 소리로 축제 분위기가 된다. 지난 3일 오후 4시. 현충사는 은행나무길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박영현(여·43)씨는 “은행나무길을 걷기 위해 현충사에 주차하고 걸어 나왔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나왔는데 가을 정취를 흠뻑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신길동에서 온 김성겸(36)씨는 “사진을 찍기 위해 일년 만에 다시 찾아왔는데 작년보다 더 멋지게 물들었다”며 “차가 없는 새벽시간에 오면 더 근사한 사진을 찍었을 것 같은데 서둘러 오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현충사 초입으로 접어드는 삼거리에서 곡교천 둔치로 내려가 길게 조성된 꽃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국화꽃밭을 시작으로 구절초와 코스모스로 이어지는 가을꽃 군락지는 곡교천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노란 은행나무 길을 오른쪽으로 가을꽃들이 풍성하게 만개한 풍경은 단조로운 일상의 갑갑증을 한꺼번에 날려준다. 색색의 국화 중에는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노란 국화도 한창이고 흰색 구절초 군락지 역시 나들이객의 눈길을 끈다. 이곳 저곳에 세워진 익살스러운 표정의 허수아비와 바람개비는 어린 아이들에게 인기다. 코스모스 군락지 너머에는 계절을 잊은 무밭이 푸르게 펼쳐져 노란 은행나무길과 대조를 이루며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온양 배미동에서 온 조춘현(65)씨는 “꽃 사진 찍으러 자주 찾는다”며 “사계가 모두 예쁜 곳이다. 4월에 유채꽃 필 때도 장관이다. 은행잎이 모두 졌을 때 새벽에 나오면 길이 온통 노란 잎으로 깔려 걷기에도 아까울 정도”라고 소개했다.

 노란 은행잎이 나부끼는 은행나무 길의 매력은 해거름에 특히 빼어나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저녁놀은 곡교천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운치 있고 정감 있게 변한다. 낮 동안 한없이 눈부시고 화려했던 잎들이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애잔하게 변한다. 노란 은행잎이 비처럼 내리고 나면 가을은 더욱 깊어지고 그윽해진다.

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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