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의 '종각역 득도女' "어려보이는 비결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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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의 왼손. 수행을 한다는 여인은 손금의 십자부분(빨간색)에 운명지를 돌돌말아 태워야 재물복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역 주변엔 유독 "도를 아십니까"라며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도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쉰세대. “얼굴에서 기운이 느껴져요” “광채가 난다는 이야기 들으시죠” 같은 말이 대세를 이루던 것도 벌써 2~3년이 됐다.

4일 오후 종각역에서 만난 ‘수행자’는 다짜고짜 인연 이야기를 했다. 피곤에 찌들어 간신히 뜬 눈은 게슴츠레했다.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해칠 수 없다는 것 아시잖아요.” “친한 친구라면 5분은 늦어도 되지 않느냐”는 말에 취재진은 그녀를 따라나섰다. 일본 배우 아오이 유우를 닮은 그녀는 동료 수행자라는 한 여성과 2인 1조로 활동하는 듯 했다. 종각역 인근의 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저희 같은 사람 많이 만나보셨죠.”
“아뇨.”
“인터넷에서 이야기는 들어보셨을거 아닌가요.”
“그렇긴 하죠.”

어색함을 풀려는 기색이 엿보였다. 자신과 취재진이 만난 것은 인연이고, 그 인연이 안타까워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하지만 따스한 곳에 들어오자 그녀의 눈이 금세 풀렸다. 추운 날씨에 거리를 떠돌며 행인을 잡고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에 지친 듯 했다. 이따금씩 자신이 어디까지 말했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제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요”라고 했지만 졸려서 정신이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이었지만 “수행을 해서 어려보이는 것”이라며 자신을 83년생(29세)이라고 소개했다.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켰다. 비용은 기자가 지불했다. “조상님이 기를 막고 있다” “인상이 좋은데 업보가 있다” 등의 레퍼토리를 기대했지만, 그녀가 내놓은 것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종이를 꺼내더니 하늘(天), 땅(地), 사람(人) 3가지를 적었다. 하늘의 기는 이미 쇠했고, 옛날에는 조상 묘 잘 쓰면 돈 벌었는데 오늘날에는 아스팔트 때문에 명당이 사라졌으며, 이제는 사람 즉 귀인을 잘 만나는 것이 명당이라는 논리였다. 그 다음 나올 문장은 뻔하다. “제가 그 귀인입니다.”

이후에는 동영상 강의를 방불케 하는 ‘귀인의 인연론’이 이어진다. 당신에게서는 형제가 많은 장남의 기운이 느껴진다(기자는 외아들이다)면서 부모로부터 내려온 업보가 많아서 기력이 막혀있다며 이를 뚫어줘야 천상의 기운과 통할 수 있다고 했다. 집안에 요절한 사람이 많아서 그 사람들의 기운이 (기자의 앞길을) 막는 것도 있다고 했다. (기자에게는 1950년대에 파상풍으로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8촌 이내 가족들이 70~80대에 사망했다.)

“재물은 혼자의 힘으로 버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의 운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에 업이 껴 있으니 굿을 해서 풀어야 한다면서 돈을 요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5만원을 그 자리에서 지불하고 얼른 자리를 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돈 이야기를 바로 꺼내지 않는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순간 왼손 손금을 보자고 했다. “그것 봐”라면서 손금 가로선과 세로선이 만나는 곳을 가리킨다. 십자선이 있어서 액이 끼었다고 했다. 운명지라고 불리는 종이에 이름을 적어 돌돌 말은 다음 손바닥 정중앙에 세워놓고 담배를 피우듯 태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그 연기가 위로 솟아오르지 않고 손바닥에 스며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식은 ‘촛농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고 모두 증발할 수 있는’ 신이 정한 곳에서 해야 하며, 거기에는 떡ㆍ육포ㆍ정화수 등을 한 상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 ‘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5분만 달라며 시작한 대화는 30분을 훌쩍 넘어섰다. 더 있다가는 가서 ‘정성’까지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어서야겠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나중에 따로 찾아가겠으니 수련하는 곳이 어디냐고 하자 연신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 때나 찾아올 수 없고, 지금이 하늘이 내린 때와 장소라고 했다. “굿이나 점을 보는 것도 길일을 여러 날짜 중 택하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나중에 연락을 받기로 하고 헤어졌다.

커피숍을 나오면서 뒤를 돌아봤다. 30분간 쉴 새 없이 도를 설파하던 그 여인은 지친 듯 탁자에 바로 엎드려서 잠을 청했고, 같이 왔던 다른 여인은 그녀를 지켜봤다. 이들은 하루에 몇 명에게 말을 걸고, 몇 명의 ‘정성’에 성공할까. 혹시나 누가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취재진 역시 두리번거리면서 종각역 승강장으로 내려왔다.

2시간쯤 뒤 전화가 왔다. 휴대전화였다. 취재진이 “나중에 굿하러 찾아갈테니 전화번호를 달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전화번호를 줄 수 없다고 했었다. 적절히 이야기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종각역 인근에서 활동하는 ‘도인’들은 수십 명 선이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았고, 천상=극락=천당=천국이라는 공식을 사용했다. 모든 종교에 다 정통하다는 뉘앙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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