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도시로 변한 월가 … 맨해튼은 교통 끊겨 고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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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 침수 뉴욕·뉴저지를 잇는 호보큰역이 29일(현지시간) 샌디의 영향으로 침수됐다. 사진은 빗물이 엘리베이터 틈새를 뚫고 들어오는 모습. [로이터=뉴시스]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뉴저지주 남부해안에 상륙한 29일(현지시간) 오후 8시. 뉴욕 맨해튼 남쪽 끝 배터리파크엔 바닷물이 삽시간에 무릎까지 차올라 왔다. 시속 175㎞에 이른 강풍에다 때마침 조수가 만조에 이르면서 바닷물의 수위가 사상 최고 기록인 14피트(4.3m)까지 치솟은 것이다.

 황급히 차를 몰아 맨해튼 서쪽 허드슨파크웨이로 들어섰다. 허드슨 강에서 넘쳐 올라온 강물이 폭포수처럼 도로로 밀려 들어왔다. 오도가도 못하고 도로에 갇혀 침수된 차들이 속출했다.

영화 ‘캐리비안 해적’ 배 침몰 이날 노스캐롤라이나 주 아우터뱅크스 인근 해상을 지나던 유람선 HMS바운티호가 샌디를 만나 침몰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뉴욕 지하철 상당 구간도 침수됐다. 지하철역 입구에 쌓아놓은 모래주머니로는 역부족이었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배터리 터널 역시 물에 잠겼다. 이날 오후 CNN이 “뉴욕증권거래소(NYSE) 객장에 1m 넘게 물이 찼다”고 보도했지만 NYSE 측이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부인해 보도를 정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하 고압선 침수로 감전사고가 날 것을 우려한 뉴욕시가 이날 저녁 맨해튼 남부 저지대 50만 가구에 대한 전기 공급을 끊어 월가 인근은 암흑 천지가 됐다. 뉴욕시와 인근 도시를 잇는 다리와 터널도 이날 오후 차례로 폐쇄됐다. 여기다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과 열차·페리·항공편도 모두 끊겨 맨해튼은 이날 저녁부터 외부와 단절된 섬이 됐다. 뉴욕교통청(MTA) 조셉 로타 청장은 “뉴욕 지하철 108년 역사에 이런 참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동부 7개 주의 공립학교는 29일에 이어 30일까지 휴교령을 내렸고, NYSE와 나스닥 증시, 시카고 선물 거래소도 30일까지 휴장하기로 했다. 미국여객철도공사(Amtrak)는 동부 연안 노선을 전면 폐쇄했고, 8962편의 항공기가 결항됐다.

 강풍 피해도 속출했다. 57가에 짓고 있는 초고층 아파트 ‘원57’의 80층 높이 골조에서 공사 크레인이 강풍에 부러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할렘 등 맨해튼 북부 지역도 강풍에 쓰러진 나무가 전력선을 덮치면서 정전 사고가 속출했다. 샌디가 처음 상륙한 뉴저지주 카지노 도시 아틀랜틱시티는 어른 허리 높이까지 바닷물이 범람해 도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다.

 인명 피해도 늘고 있다. 뉴저지·뉴욕·메릴랜드·펜실베이니아·코네티컷주 등에서 샌디로 인한 사망자 수가 30일 오전 8시 현재 최소 17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 인근 을 지나던 유람선 ‘HMS바운티’호가 침몰해 선원 14명이 해병경비대에 의해 구조됐으나 선원 2명이 실종됐다. 이 배는 1789년 대영제국의 탐험선이었던 ‘바운티’호를 복제한 것으로, 할리우드 영화 ‘캐리비언 해적’에 출연한 바 있다. 샌디는 29일 자정 무렵 허리케인에서 열대성 폭풍으로 세력이 약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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