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뒤 돈 마구 찍은 독일 2년새 물가 7000만 배 치솟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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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 발행된 1조 마르크 동전. [중앙포토]

양적 완화로 시장에 돈이 풀리면 돈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는 치솟고요. 양적 완화를 무조건 환영할 수 없는 이유이죠.

 그런데도 시장에 돈을 마구 풀어서 물가가 폭등해 국민이 고생했던 나라가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세워진 바이마르공화국입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인데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 연합군에 졌습니다. 그래서 승리한 국가는 독일보고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배상금을 내라고 했죠. 당시 전쟁 배상금은 독일 국가 전체 재산의 3배가 넘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전쟁에서 진 독일의 경제가 좋았을 리 없었습니다. 배상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독일은 하는 수 없이 돈을 마구 찍어 시장에 돈을 풀었습니다.

 이렇게 시장에 돈이 많아지다 보니 돈값이 폭락했습니다. 1921년 1월에 0.3마르크였던 신문 가격은 1923년 11월에는 7000만 마르크로 치솟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20년간 저축한 돈을 찾아서 쓰려고 보니 간신히 빵 한 개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장을 보러 갈 때에는 돈을 마차에 가득 싣고 가야 했다는 얘기도 있고요. 심지어 그 시절에는 식당에서 밥을 빨리 먹어야 했다고 합니다. 밥을 먹는 도중에 음식 가격이 올라서라는 웃지 못할 이유 때문에요. 그래서 한국도 15년 전 외환위기로 경제가 어려웠을 때 시장에 돈을 마구 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이 막대한 돈을 시장에 풀지 않느냐고요. 그런데도 미국 경제는 괜찮지 않냐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건 미국의 돈, 곧 달러가 세계 모든 돈의 중심인 ‘기축통화’이기 때문입니다. 무역 등 경제 활동을 할 때 표준이 되는 돈이죠. 전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달러를 풀어도 1920년대 바이마르공화국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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