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데라다 데루스케 주한 일본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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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일.한 공동 개최는 양국민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특히 젊은 세대간 교류의 도약대가 됐습니다."

이달 중순 부임 만 3년 만에 한국을 떠나는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63.사진)주한 일본대사. 사무라이풍의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전 대사와 달리 온화하면서도 세련된 매너로 영국 신사를 연상시키는 그는 이임 소회를 묻는 질문에 첫마디로 월드컵 얘기를 꺼냈다.

"월드컵 공동 개최와 더불어 '일.한, 한.일 국민교류의 해'로서 8백건 이상의 문화 교류가 이뤄진 지난해는 양국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이 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만나 "양국민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2002년의 성과를 계승해 발전시켜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일본 대입 센터시험(수능 시험)의 선택과목에 한국어가 포함된 것도 큰 그에겐 큰 보람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어 공부가 벽에 부닥치는 바람에 젊은 세대에 한국어 공부를 맡겨야한다고 생각해 한국어가 대입 선택과목으로 채택되는데 노력했다"면서 "앞으로 20~30년이 지나면 한국말을 잘 하는 일본 대사가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두 나라 관계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경제, 문화.스포츠, 청소년, 지방의 4분야에 걸쳐 '양국 우호 하이웨이'를 구축해야 한다"며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겐 고통스런 기억도 있다. 2001년 한.일간 정치.외교 문제로 발전한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다.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얼마나 많이 불려갔는 지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며 "일본의 외교관 가운데 상대국 정부에 초치된 횟수가 가장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민의 감정적인 반발은 있었지만 이것이 반일 운동으로 전개되지 않은 데서 한국 사회의 성숙함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사회내의 반미 기류와 관련해선 "제 3자가 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지만 동두천 여중생 사망 사건은 공무중 사고로서 1995년 오키나와(沖繩)에서 일어난 주일미군의 일본 여학생 성폭행 사건과는 큰 차이가 있다"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선 "한.미.일 3국간 공조가 긴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 귀임후 "41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끝내고 외무성과 관계 있는 기관에서 근무하게 된다"고 밝힌 그는 주일 한국대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관광공사의 명예 관광대사로도 활동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앞으로 일본의 한국 관광객(현재 연간 2백20만명) 배증 계획을 세우고 싶다"며 "명예 관광대사는 개인적으로 매우 즐거운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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