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한국은행은 26일 지난 3분기 우리 경제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성장하는 데 그쳤다고 발표했다. 한국경제가 분기별로 2%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역사상 네 차례뿐이다. 과거 세 차례의 저성장은 오일쇼크나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일시적인 외부충격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별다른 위기상황이 아닌데도 경기가 슬금슬금 주저앉고 있다. 구조적인 저성장의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경기하강의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빨라지는 것도 걱정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2.4%로 낮추면서 3분기에 1.8%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3분기 성장률이 여기에도 못 미치면서 올해 연간 성장률 2.4% 달성도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내년에 3%대 초반의 성장률도 장담할 수 없다. 저성장을 초래한 대내외 경제 여건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특히 3분기 성장률 추락의 가장 큰 요인이 설비투자의 감소라는 점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지금 당장 경기가 가라앉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성장 기반마저 허물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저성장이 고착화될지 모른다는 경고와 함께 이를 극복할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을 이미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임기말 정부는 저성장의 흐름을 되돌릴 만한 정책을 펼칠 능력을 상실했고, 차기 정부를 이끌 주요 대선후보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보다 오히려 성장의 잠재력을 갉아먹을 수 있는 공약만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세계경제의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12월 대선과 내년의 정권교체라는 ‘정치 리스크’까지 겹치면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되고, 자칫하면 한국경제가 재기할 수 있는 복원력까지 잃을 수도 있다.

  정치권은 한국경제가 이전과는 다른 구조적인 위기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비상한 각오로 이를 극복할 비전을 내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년에 출범할 새 정부는 ‘저성장의 질곡’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