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LB] '진정한 삼진왕' 레이 랭크포드

중앙일보

입력

헛점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왼손타자 레이 랭크포드. 적어도 이 말은 랭크포드를 상대로 했을 때에 1997시즌까지는 박찬호에게 들어맞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4년전이었던 1997년 6월 7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 선발 등판했던 박찬호는 3개의 솔로홈런을 허용하며 1997시즌의 3패째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이 중에서 2개의 홈런이 바로 랭크포드에게 허용한 연타석홈런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박찬호로부터 뽑아낸 2개의 홈런 덕에 랭크포드는 1997시즌에 현재까지 자신의 한 시즌 홈런 기록으로서는 최다인 31개의 홈런을 기록할 수 있었고, 이와 더불어 생애 첫 올스타전 출장이라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었다.

또한 랭크포드는 1999시즌에도 자신이 기록했던 15개의 홈런 중에서 5개의 홈런을 다저스를 상대로 해서 기록할 정도로 유독 다저스에는 강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홈런타자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점은 그의 기록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랭크포드의 홈런에는 의미있는 홈런 기록들도 많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1년 9월 1일에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이다.

이 경기에서 랭크포드는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하고 있는 펠릭스 호세와 함께 2개의 홈런을 기록했는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역사상 한 경기에서 두 명의 선수가 2개의 홈런을 기록하기는 이것이 195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1995년에 그가 기록했던 25홈런은 1952년, 스탠 뮤지얼이 작성했던 21홈런을 넘어서는 새로운 카디널스 중견수의 홈런 기록이었다. 1997년 마크 맥과이어가 카디널스로 이적하기 이전까지는 확실히 그는 카디널스를 대표하는 홈런타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났을 때 팬들이 랭크포드에게서 떠올리게 될 첫 번째 기억은 이처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대표했던 홈런타자라는 생각이 앞서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레지 잭슨과도 비견될 만한 진정한 삼진왕이라는 생각이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7월 22일(한국시간) 랭크포드는 시즌 100번째 삼진을 기록하며 또 한 번의 100삼진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1991년부터 연속적으로 이어오던 자신의 한 시즌 100삼진 기록을 11시즌으로 연장한 것이며, 또한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1991년 이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세운 기록이기도 했다.

랭크포드가 한 시즌에 100개가 되지 못하는 삼진을 기록한 것은 그의 첫 빅리그 시즌이었던 1990년이 유일했다. 하지만 랭크포드는 이 해에 불과 39경기만을 뛰어 운 좋게도 이 기록을 달성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랭크포드의 이 11시즌 연속 100삼진 기록은 연속적인 시즌 기록으로서는 레지 잭슨(13년 연속 100삼진)과 윌리 스타젤(12년 연속 100삼진)에 이은 역대 3위의 기록이며,풀타임으로 뛴 메이저리그의 전 시즌을 100개 이상의 삼진으로 장식한 선수로서는 현재까지 랭크포드가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다.

아마도 2년이 지났을 때에는 랭크포드는 충분히 잭슨이 가진 역대 최고 기록과도 타이를 이루게 될 것이다. 파업으로 인해 전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던 1994시즌에도 랭크포드는 113개의 삼진을 기록했는데, 이는 레지 샌더스보다 불과 1개가 적은 리그 2위의 기록이었다. 또한 랭크포드는 1992년에는 147개의 삼진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1987년 잭 클락이 세운 139개의 삼진기록을 넘어서는 새로운 카디널스 기록이기도 했다.

1998년에는 새로이 팀동료가 된 맥과이어가 시즌 155개의 삼진을 기록하며 새로운 카디널스 기록을 세우기는 했지만, 그도 역시 151개의 삼진을 기록하며 카디널스의 좌타자로서는 가장 많은 삼진을 당한 선수로서의 불명예는 계속 지킬 수 있었다. 이 해 8월 8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기록한 그의 5개의 삼진 기록은 1970년 리치 앨런이 세운 카디널스 한 경기 최다 삼진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각종 삼진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는 랭크포드의 추세를 감안해 본다면 34세인 그가 잭슨의 연속적인 100삼진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것은 물론이고 역대 최고 기록을 넘어서는 것도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랭크포드가 이런 치욕적인 기록을 이루어 나간다고 해서 그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실패한 선수로서 기록된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또 다른 멋진 기록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도 역시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주인공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통산 222개의 홈런과 248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랭크포드는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라울 몬데시(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함께 가장 균형적으로 홈런과 도루를 양산하고 있는 선수 중의 한 명이다.지금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단 4명 밖에 달성하지 못했던 300(홈런)-300(도루)라는 대기록을 먼 훗날 랭크포드 역시 달성하게 된다면 그도 역시 영웅으로 남게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