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입사 조건 연구한다며 교수팀이 가짜 지원서 1900장 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학의 경제학 교수 연구팀이 취업 관련 연구를 한다며 가짜 자기소개서 1900여 장을 만들어 대기업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서울의 모 사립대학 경제학과 강모(43) 교수를 업무방해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강 교수는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들을 시켜 현대자동차그룹 5개 계열사와 한화·이랜드·한국투자증권 등 대기업 121곳의 올 하반기 공채에 남녀 학생 9명 명의로 8장씩 허위 자기소개서 1900여 장을 냈다. 강 교수의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은 석사과정 3명, 학부생 6명 등 모두 9명이었다.

 이들이 제출한 자기소개서는 생년월일·출신학교·주민등록번호 등 기본정보가 모두 달랐다. 증명사진도 안경을 그려 넣거나 머리 길이를 다르게 하는 등 조작됐다. 한 석사과정 대학원생은 자신의 여자 친구 사진을 자기소개서에 붙이기도 했다. 어학점수도 서로 다르게 기입했다.

 현대차그룹 측은 자기소개서 중 비슷한 사진이 여러 장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겨 재검토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중순 경찰에 해당 학생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입사지원서 전체를 다섯 차례나 꼼꼼하게 검토하는 등 입사전형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당초 취업 컨설팅업체가 대기업 입사 서류전형 기준을 테스트하기 위해 벌어진 일로 추정하고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 하지만 이날 오후 강 교수가 경찰에 자진 출석해 “‘스펙이 좋으면 실제 취업이 잘되는가’에 대한 연구 데이터를 얻기 위해 대기업 공채 입사서류를 조작했다”고 진술했다. 강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연구 욕심이 과했고 세상 물정에 어두워 생긴 일이니 양해해 달라”고 해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