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퇴 거부로 해결될 일 아니다” … 최필립 압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2일 서울 방배동의 한 식당에서 택시기사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형수 기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22일 최필립(84)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거취를 직접 나서서 압박했다. 전날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에서 그의 거취 문제에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은 채 “이사장과 이사진이 스스로 해답을 내놓길 바란다”고만 했었다. 회견 뒤 최 이사장은 SBS와 인터뷰를 하고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자 박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퇴를 거부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후보가 직접 최 이사장의 ‘사퇴’를 언급한 건 처음이다.

 그는 “일부 언론에 흘러나온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 매각 문제를 포함해 제기되는 이런저런 의혹들에 대해 (정수장학회는)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명쾌하고 투명하게 소상히 해명하고 밝힐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박 후보는 또 정수장학회 태동 과정의 강압성을 인정한 법원 판결을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석했다가 정정한 데 대해선 “‘김지태씨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완전히 박탈된 정도로 강압성이 인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법원에서 판결한 것을 설명드린 것인데, 표현에 무엇인가 오해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앞서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조직본부 발대식에서 박 후보는 “야당은 계속 네거티브만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공격에서 시작해 공격으로 끝난다”며 “우리는 국민 편에 서서 변화를 이끌고 정책으로 승부한 정당으로, 언제나 승리했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전날 회견의 역풍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양한 방향에서 진화를 시도한 셈이지만 그의 회견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공개적으로 비판이 나왔다. 특히 박 후보가 공식 선거대책위원회 라인을 배제한 채 의원실 보좌진에게만 회견 준비를 시킨 것으로 알려져 박 후보의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불만이 비등한 상태다.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은 22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후보가 김지태씨 유족들의 주식반환청구소송의 1심 판결 내용을 왜 잘못 알고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라고 했다. 심재철 최고위원도 평화방송에 출연해 “박 후보가 (강압성 여부에 대한 발언을) 수정하긴 했지만 법원 판결을 그대로 존중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이재오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정수장학회는 5·16 쿠데타의 산물인데 정수장학회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 지난번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어떤 국민이 믿겠느냐”고 비판했다.

 최근 5·16이나 유신 시절의 2차 인혁당 사건 등 과거사 대응 과정에서 박 후보가 선대위 공식라인과 의논하기보다는 혼자 결정을 내리고 몇몇 측근만 내용을 아는 일이 반복됐다. 인사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광옥 국민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도 ‘비밀주의’를 고집하다가 안대희 국민통합위원장의 반발을 불렀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박 후보가 보안만 중시하다 사전 검증이 소홀한 경우가 생긴다. 이번 회견도 집단토의가 있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과 같은 토론과정이 생략돼 뭐가 잘못됐는지 사전에 체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익명을 원한 재선 의원은 “후보가 자기와 주파수가 맞는 보좌진과만 상의해 여론과 동떨어지는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며 “후보의 메시지는 철저히 당과 조율된 상태에서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 측근, 육영재단 이사 물러나=박근혜 후보의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가 설립한 육영재단의 이사진 일부가 최근 교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새누리당에 따르면 육영재단은 지난 8일 신임 임시이사 2명에 대한 선임을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신청했다고 한다. 기존 박근혜 후보 측근인 백기승(R2B크리에이션 대표) 공보위원과 박 후보의 동생 지만씨가 회장인 EG그룹 계열사의 임원 출신 이인씨가 이사직을 사임하고, 명지대 박부진(아동학) 교수와 KBS 출신인 김현욱 아나운서가 후임으로 선임됐다. 백 위원은 “지난해 폐암 수술로 이사회 활동을 못해 이미 올 4월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최근 정수장학회 논란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