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으러 간다, 만수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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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5-3이던 6회 초 2사 3루에서 마운드에 오른 이만수(54) SK 감독은 투수 채병용(30)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채병용은 이 감독의 손을 맞잡았고, 씩 웃은 뒤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사라졌다. 채병용이 더그아웃에 들어갈 때까지 인천 문학구장에는 SK 팬들의 기립박수 소리가 울려퍼졌다. SK를 한국시리즈로 이끈 구세주를 향한 감사였다.

SK 이만수 감독이 22일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 5-3으로 앞선 7회 초 투수 박희수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치자 환호하고 있다. [인천=이영목 기자]

 올해도 한국시리즈는 지난해의 재판(再版), 삼성과 SK의 맞대결로 결정됐다. SK는 22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PO) 5차전에서 6-3으로 이겼다. 시리즈 전적 3승2패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성공.

 SK는 에이스 김광현(24)이 3실점으로 무너지며 2회도 버티지 못하고 강판됐다. 하지만 SK에는 PO 4차전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채병용이 버티고 있었다. 0-3이던 2회 초 2사 1·3루에서 채병용이 마운드에 올랐다. 추가 실점하면 시리즈 향방이 넘어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하지만 채병용은 떨지도, 서두르지도 않았다. 첫 타자 전준우를 볼넷으로 내보냈으나 다음 타자 강민호를 삼진으로 잡아내 급한 불을 껐다.

 이후 채병용은 거칠 게 없었다. 직구 최고구속은 141㎞였으나 홈플레이트 구석구석을 찌르는 안정된 제구로 롯데 타선을 틀어막았다. 간간이 섞은 슬라이더와 커브, 포크볼로 범타를 유도했다. 4이닝 1피안타·무실점으로 역전 발판을 놓은 채병용은 2009년 KIA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 승리 이후 약 3년 만에 포스트시즌 승리투수 감격을 맛봤다.

SK 채병용이 22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SK는 역시 가을에 강했다. 초반 0-3으로 끌려갔지만 지면 끝이라는 부담은 없었다. 대신 여유와 집중력이 살아 있었다. 마운드가 안정되자 타선이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2회 말 조인성의 2타점 적시타로 추격에 나섰고, 4회 말 박정권의 2루타와 상대 실책을 묶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5회 말 박재상의 역전 3루타와 상대 실책으로 역전에 성공하며 승기를 잡았다. 경기 내내 탄탄한 내야 수비로 롯데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근우(30)는 PO 타율 4할4푼4리로 활약하며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롯데는 준PO에서 두산을 물리쳐 큰 경기 징크스를 깼다. SK와도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SK의 강고한 벽을 넘기에는 ‘한 뼘’이 부족했다.

인천=허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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