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유신과 문화는 동의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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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니다. 나 혼자의 생각이지만 지금은 2003년 말 그대로 유신(維新)의 시대다. 국어사전식 풀이대로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 내가 젊음예찬론자인 까닭

나는 이 풍진 세상을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일찍이 1960년대 초기부터 한때나마 자의반 타의반의 박정희(朴正熙)식 유신체제를 몸소 겪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단 한 번도 내 스스로가 유신의 참 의미를 체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냥 남들이 유신이라니까 건성 그게 유신이려니 싶었다.

그건 참 이상야릇한 현상이었다. 혁명.내란.폭동.봉기.의거 같은 낱말은 어렵지 않게 알아먹을 수 있는데 왜 유독 유신이라는 낱말은 늘 알쏭달쏭하게만 여겨졌을까.

그렇게 엄벙덤벙 세월을 흘려 보내면서 사실상 유신이라는 거창한 용어는 어느덧 용도 폐기가 완료된 물건으로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지난 연말 16대 대통령선거를 맞는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 나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어느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특정 사실 때문에 충격에 휩싸인 건 천만에 아니다. 선거를 통해 이 땅에 존재하는 젊음의 힘이 새삼 입증됐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젊음의 힘은 2002년 월드컵에서 비롯된다. 당시 처음 들어보는 네 글자 함성 "대~한민국"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우리네 여중생을 위한 추운 겨울 촛불시위로 이어지고 또 공교롭게도 16대 대통령선거까지 연결되는 역사의 도도한 물결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어리둥절한 구경꾼 입장에 머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나는 젊음 예찬자로 돌변했다. 왜냐하면 나는 생전 처음 젊음 그 자체의 위대성을 발견했고 동시에 체감을 했기 때문이다.

2002년 6월의 신화에서 비롯된 젊음의 힘은 전면적으로 달랐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의 젊은 새 대통령의 탄생과 함께 폭발했다. 폭발이라는 단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토록 팽팽해서 마치 서로를 잡아 먹을 듯싶던 양대 진영의 혈전이 젊은 팀의 승리로 확정되자 한껏 살인적으로 고조됐던 긴장감이 어찌 그리도 순식간에 잠잠해질 수 있단 말인가.

그 잠잠함 속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달라졌다. 말로만 달라진 게 아니다.

예를 들 수도 있다. 가령 컴퓨터를 인간성 말살의 기계로 규정하고 손에 대는 것조차 꺼리던 내가 이제 열세살된 내 딸이 맨날 두들겨대는 컴퓨터를 전폭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게 됐다.

*** 인터넷으로 뭉쳤다는 소문

선거 막판에 많은 젊은이가 인터넷망을 통해 하나로 뭉쳤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음과 혁신에 대한 최초의 지지표명이었다.

겉무늬만 젊음 예찬론자였던 내가 내 몸통 전체를 젊음 쪽으로 몸소 유턴해보기는 실로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어느덧 내 입에선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아! 이게 바로 유신 아닌가!'

믿거나 말거나 나는 나 혼자서 단독으로 유신을 일으켰다. 내 안의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했으니 그게 유신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지금으로부터 어느 측면에서건 늙음이 젊음을 다시 이기는 그날까지 나의 유신은 유효할 것이다. 칼럼 제목 때문에 덧붙이는 말이 아니다. 유신과 문화는 동의어다.

조영남 가수

◇약력=서울대 음대 졸업, 미 플로리다 트리니티 신학대 졸업. 68년 가요계 데뷔, 뉴욕 카네기 콘서트홀 공연 (수필집 '조영남씬 천재예요' 외 다수, "MANIF"외 국제미술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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