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6억원 미스터리 검찰 눈엔 안 보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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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검찰의 진짜 힘은 기소가 아니라 불기소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검찰이 수사 외적 고려에 따라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다면 법원, 나아가 국민이 판단할 여지조차 사라져 버리게 됨을 경계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현금 6억원 미스터리’는 검찰이 왜 신뢰받지 못하는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간 진행됐던 서울중앙지검 수사의 민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이광범 특별검사팀의 조사가 진행되면서다. 특히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는 당시 검찰에 낸 서면 답변서에서 부지 매입 대금 중 6억원을 큰아버지인 이상은 ㈜다스 회장에게서 빌렸다며 “현금 6억원을 직접 받아 왔다”고 설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월 구의동에 있는 큰아버지에게서 6억원을 받아 여행용 가방에 담은 뒤 직접 운전해 청와대 관저 붙박이장에 보관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형씨의 진술은 수사 기법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이 보더라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6억원이나 되는 돈을 계좌이체가 아니라 현금 다발로 주고받았다면 정상적 거래라 보기 힘들다. 검찰은 당연히 계좌추적 등을 통해 이 회장이 현금을 빌려준 게 사실인지 확인했어야 했다. 만약 시형씨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 대통령의 편법 상속 등 제3의 가능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사실이라고 해도 이 회장이 그 돈을 어떻게 조성했는지 그 출처를 파악하는 게 상식에 맞다. 하지만 당시 수사팀은 시형씨를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이지도, 이 회장의 계좌를 추적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수사의 ABC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지난 6월 시형씨 등 관련자 7명에 대해 전원 무혐의 처분을 하면서 “(시형씨의) 답변서를 받아보니 아귀가 딱 맞았다. 추궁할 게 없어서 부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검찰이 답변서 내용을 ‘100% 사실’로 받아들인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수사에 정치적 고려가 있었음을 시사한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의 지난 8일 발언이 단순한 실언이 아님을 뒷받침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러고도 부실 수사가 아니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제 의혹을 규명할 책임은 이광범 특검팀에 있다. 특검팀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안갯속에 싸여 있는 사저 부지 매입 과정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특검 수사 개시 직전 중국으로 출국한 이 회장도 즉시 귀국해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이 회장이 평소 현금 거래를 좋아한다”는 식의 해명은 의심만 깊게 할 뿐이다. 특검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리라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모든 의문점을 빠짐없이 조사함으로써 절차적 정의를 반드시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번 특검 수사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