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수일 목암생명연 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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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미국 바이오 산업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산업을 이끌고 있는 것은 돈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모험심 강한 혁신적인 과학자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인간지놈 지도 발표로 유명해진 미국의 벤처기업 셀레라 지노믹스의 크레이그 밴터 사장은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출신의 과학자다.

이 사람은 첫 유전자 성분을 밝혀내고는 특허를 내겠다는 발상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안정된 연구원을 떠나 벤처업계로 투신한 사람이다.

미국에는 이런 성공 스토리가 많다. 명분이나 안정보다 기술과 신념을 믿고 밀고 나가는 엔터리너, 즉 독불장군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에는 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인력도 많거니와 힘든 연구는 국립연구원.대학과 협력할 수 있고, 기술과 비전이 있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투자자도 많다.

그러나 최종적인 성공은 선각자들이 직접 부닥쳐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국에선 미국의 시스템과 환경을 부러워하지만 나는 이런 독불장군이 많다는 게 가장 부럽다.

한국인에게도 이런 자질이 부족하진 않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한 젊은 교포2세는 명문 의대를 졸업하고도 의사가 아닌 바이오 벤처업계에 투신해 연간 1백50만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기업가가 됐다.

한국의 바이오 산업에서 가장 걸림돌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신약 개발의 경우 생물학자만으론 한계가 있다. 기초의학을 아는 의사들이 반드시 필요한데 참여하는 의사가 적은 데다, 일부 의대에선 임상에 치중해 기초의학 교육이 부족한 사례도 있다.

바이오 산업 발전을 위해 젊은 과학자들을 선진국의 해당 분야로 진출토록 하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아직 우리에게 바이오 분야는 선진 기술을 배워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정수일 박사는 1955년 서울대 의대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 미국 NIH에서 30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98년 정년 퇴직한 후 국내 목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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