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변화를 가로막는 저항이란 이런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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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세계 대학평가에서 100위 이내 진입, 9월 한 달간 135억원 기부금 유치. 국내 최고의 이공계 대학 KAIST의 성적표다. 그런데도 한때 대학 개혁의 전도사로 추앙받던 서남표 총장은 엊그제 내년 3월 물러나겠다는 발표를 해야 했다. 그러니 다른 누구보다 서 총장 본인부터 이런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수 년간 KAIST를 지켜본 외부인들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교수들이 총장을, 총장이 다시 이사장을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현실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서 총장이 교수의 특허권을 가로챘다고 주장한 교수에 대해 서 총장이 진실을 가려달라며 대학 관할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고, 허위 주장이라는 수사 결과를 받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서 총장은 물론이고 전임 러플린 전 총장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KAIST 난맥상은 변화에 대한 저항과 이를 관리하지 못한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기업에서도 변화를 추구하는 리더와 이를 거부하는 구성원 간 저항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파멸 위기에서 IBM을 구해낸 루 거스너 전 CEO조차 “우리 조직엔 언제나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며 IBM의 조직 문화를 ‘안 돼(No) 문화’라고 비꼬기도 했다.

 KAIST 역시 여느 조직과 다를 바 없이 변화에 대한 구성원 간 관점의 차이에서 저항과 갈등이 비롯됐다. 이 때문에 어느 조직이든 저항과 갈등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나 혁신은 추진력을 얻을 수도, 파멸로 결론 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 총장에게 있어서 변화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글로벌 연구중심 대학이었고, 이를 위해 엄격한 교수업적평가제 등 제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이에 비해 교수들에게 있어서 이런 변화는 수긍할 수는 있으나 파괴적이고, 귀찮으며, 일상의 평온을 깨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둘 간의 눈높이가 달라 벌어지는 문제는 대학이라고 더 유별나지 않다.

 개인적으로 서 총장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변화와 개혁 프로그램을 주도할 그룹이 이 대학 안에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원래 개혁은 한두 사람의 주도로 이뤄지지만 변화의 힘을 얻으려면 수십 명 정도의 변화 주도 그룹이 뒷받침돼 변화를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사회 임원, 조직원(여기서는 보직 교수 등) 등이 주도 그룹이 돼야 한다. 서 총장은 2010년 재임에 성공한 뒤엔 그나마 있던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한국 교수들을 무시하는 평소 말투나 태도로 서 총장 주변 보직 교수조차 그를 버거워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 공백은 몇몇 직원이 채웠으며, 이들이 거대한 교수 조직을 상대하기엔 힘이 한참 부족했다. 서 총장이 욕을 먹는 ‘소통의 부재’란 정확히 말하면 서 총장과 대다수 교수를 연결할 변화 주도 그룹의 부재로 봐야 한다.

 그가 교수들의 철밥통을 깨는 개혁 프로그램을 안착하기 위해 각종 교무회의, 전략회의를 주재했으나 모든 일은 회의가 끝난 뒤 이뤄졌다. 화기애애한 회의가 끝난 뒤엔 회의 결과를 접한 일부는 이사회에, 또 교육과학기술부 관료들에게 서 총장에 대한 악평과 개혁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올렸다. 교과부의 한 고위 관료는 “서남표는 기실 아주 정치적인 인간이며 몹쓸 사람”이라는 얘기를 이사회 때마다 기자들에게 하기도 했다.

 KAIST가 아무리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법인이라 할지라도 학교 내부의 힘겨루기, 학교 외부의 입김 등 대학 정치(politics)가 대학 행정과 현실을 압도하곤 했다. KAIST의 비극은 여기서 나온다. 이 대학의 또 다른 교수도 “회의는 절차일 뿐 상부 또는 외부의 간섭이 행정을 좌우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KAIST 사태의 본질을 서 총장 개인의 ‘독선 리더십’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값비싼 교훈을 놓치게 된다. 이보다는 변화에 대한 저항을 관리할 줄 아는 리더십 부재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런 리더십을 갖춘 사람은 누구인가. 대학 정치는 또다시 그를 흔들지 않을까. 서 총장 이후 KAIST의 앞길 역시 순탄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