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생략으로 점철된 美 역사교과서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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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선생님이 가르쳐 준 거짓말』은 미국 전역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12종 역사 교과서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분석해 철저하게 뒤집기를 해보이고 있는 책이다.

'위대한 공화국' '약속의 땅' '미국의 승리' 등 교과서 제목만 들어도 '감' 이 온다. 이 책은 바로 백인과 유럽 중심의 역사관이 교과서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역사적 인물들을 신화화하기 위해 어떻게 사실을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는지 파헤친다.

때문에 1995년 출간 당시 격렬한 찬반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미국 사회학회로부터 '올리버 콕스의 반(反) 인종차별주의 상' 을 받기도 했다.
먼저 이 교과서들이 '위대한 미 대륙의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보자.

"힘든 여행으로 난폭해진 선원들은 콜럼버스를 바다에 던지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지만, 1492년 그는 마침내 서인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자신이 신세계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평가도 받지 못하고 돈 한 푼 없이 죽었다. 그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미국 역사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

그러나 저자는 여러 사료를 통해 콜럼버스가 탐험정신보다는 신천지의 향료와 금에 대한 탐욕 때문에 항해에 나섰으며, 그렇게 고생하지도 않았고, 인디언 원주민들을 노예로 팔거나 금광캐기에 동원함으로써 많은 돈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 등을 보여준다.

또 저자는 교과서들이 고대의 아프리카계 페니키아인이 이미 아메리카를 여행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백인 우월주의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말을 배우고자 처절히 투쟁했던 헬렌 켈러의 경우 교과서의 할리우드식 영웅주의에 의해 '역사적 벙어리' 가 된 사례로 고발된다.

미국의 고졸자들은 헬렌 켈러를, 가정교사였던 설리번이 손바닥에 펌프물을 대주며 '물' 이란 철자를 적어주자 글자의 의미를 깨닫고 희열하던 '어린 영웅' 의 모습으로만 기억한다.

나중에 급진 사회주의자로서 계급간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활동했던 전투적 삶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교과서 제작과정에서 '묵살' 되었기 때문이다.

민족자결주의자로 우리나라의 3.1운동에도 영향을 끼친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은 또 어떤가. 교과서들은 철저한 식민주의.인종차별주의.반(反) 공산주의자로, 각료회의에서도 종종 '검둥이' 란 말을 사용했던 그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모른 체 한다.

그런 왜곡된 역사를 가르침으로써 미국은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 학생들, 특히 아프리카계나 라틴계 미국인들은 미국사 과목에 전혀 흥미를 못느끼거나 싫어한다.

교사들은 거짓말로 가득찬 교과서를 보며 한숨만 쉴 뿐이고, 양심적인 역사학 교수들은 학생들이 차라리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배우지 않고 대학에 오길 바라게 됐다.

또 교육 받은 미국인일수록 전쟁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대안(代案)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는 이 책은 버몬트 대학의 제임스 로웬 교수(사회학) 가 10여년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만 2년간 집중적으로 연구해 내놓은 노작(勞作) 이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많은 미시시피주에서 대학교수로 근무하던 80년대 초반에 백인 중심의 역사교과서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사 교과서들이 아직도 오류를 고치지 않고 있다 해도, 이런 내부 고발자의 성실한 비판이 있다는 것은 일단 희망적이다.

역사에 대한 자만보다 반성이 오히려 더 나은 미래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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