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총장직 내년 3월 사퇴 후임은 차기정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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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KAIST 총장이 17일 서울 수송동 서머셋팰리스 호텔에서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서남표(76) KAIST 총장이 내년 3월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2006년 7월 취임한 서 총장은 2010년 연임했으며 임기는 2014년 7월까지다. 이에 따라 KAIST 총장이 임기 전에 물러나는 것은 전임 러플린 총장에 이어 두 번째다. 서 총장은 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4년 7월까지 임기이지만 내년 3월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2006년 7월 취임 이후 최근까지 교수단체·이사회로부터 여러 차례 사퇴 압박을 받았던 그가 자진 사퇴 시점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서 총장은 지난 6년간 교수 테뉴어(정년)심사 강화, 영어 강의 등 ‘서남표식 개혁’을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소통이 부족하고 독선적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서 총장은 이날 퇴임 시기를 못 박으면서 오명(72) KAIST 이사회 이사장의 동반 퇴진도 요구했다. 서 총장은 “오 이사장은 학교의 비전과 발전 방향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총장을 내쫓기 위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왔다”며 “KAIST와 한국 사회 미래를 위해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 7월 오 이사장과 후임 총장을 공동 선임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오 이사장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현 정부 임기 중에 후임 총장을 시급히 선임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서 총장은 특히 “KAIST가 정치권 등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사유화돼선 안 된다”며 “오 이사장이 ‘대통령도 당신의 사퇴를 원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말했는지, 오 이사장이 (나를) 협박하려고 대통령을 팔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제 경험으로 봤을 때 후임 총장은 차기 정부와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분이 선임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서 총장이 본인의 거취에 대한 정부 개입을 비판하면서 차기 정부에서 후임 총장을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순수성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본지는 오 이사장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오 이사장은 공식적인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KAIST 이사는 “물러나겠다는 분이 후임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후임 총장 공동 선임 문제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 총장의 사퇴 선언 배경엔 교육과학기술부와의 갈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 총장은 2010년 자신의 연임 처리 방식을 놓고 교과부와 대립했다. KAIST는 정부출연기관이어서 이사진 16명 중 세 자리를 교과부 등 정부 관료가 맡는다. 주요 의사 결정에 정부 영향력이 큰 것이다. 2010년 서 총장 측근 이사들의 임기가 가까워 오자 정부는 새 이사를 뽑은 뒤 총장 연임 문제를 처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문술 당시 이사장과 서 총장이 ‘그럴 수 없다’고 버티면서 서 총장은 KAIST 41년 역사상 처음 연임한 총장이 됐다.

 서 총장이 사퇴 시점을 내년 3월로 밝히자 KAIST 교수협의회는 즉각 반발했다. 경종민 교수협의회장은 “서 총장이 사퇴를 미룰 명분과 근거가 없다”면서 “총장이 교수들을 개혁 거부 집단으로 몰아붙여 학교 안에 갈등만 키웠다”고 주장했다. 다른 교수는 “KAIST 총장 선임이 정권 교체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며 “서 총장이 차기 정부를 언급하면서 고도의 정치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 총장이 물러날 뜻을 밝힘에 따라 KAIST 이사회와 교과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이다. KAIST의 한 이사는 “후임 총장을 언제 어떻게 선임할지, 사퇴 시점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25일 이사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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