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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수이제와 강남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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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안 판다니까. 그만 나가라.”

 “손님한테 그런 말이 어딨냐. 왜 나가라 다그치느냐.”

 어제 오후 베이징의 짝퉁시장으로 유명한 슈수이제(秀水街)의 한 의류상점. 캐나다 관광객과 빨간 조끼를 입은 여점원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한쪽은 상대가 가격을 너무 깎아 감정이 상한 얼굴, 다른 한쪽은 ‘염치 불구하고 후려치지 않으면 바가지 쓸 게 뻔한데 손님한테 너무 오만한 것 아니냐’며 볼이 부어 있었다. 인터넷 가이드에선 상대가 최종 가격의 10배를 시초 가격으로 부를 테니 일단 10분의 1로 받아치라는 구체적인 흥정 노하우까지 나와 있다고 한다. 안 산다고 하면 뒤따라와 가격을 다시 낮춰 흥정을 이어간다고 해서 해봤는데 인터넷 경험담이 다 맞는 것은 아닌 모양이라고 캐나다인은 갸우뚱했다.

 1980년 천안문 동쪽 외국인 밀집지역에 거티후(個體戶·자영업자)들이 모여 중국의 전통 공예품과 실크 용품들을 내다팔면서 슈수이제가 형성됐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면서 이곳에 짝퉁 명품들이 쏟아졌다. 글로벌 명품 제조업체들이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했다. 이어 디자인을 베끼고 제조 공정을 흉내 낸 이른바 산자이(山寨·모방품)들이 이 시장을 점령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달리던 베이징의 쇼핑 명물이 요즘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싼 맛에 샀지만 서너 달도 못 가 실밥이 터지고 겉감이 너덜너덜해지는 경험을 맛본 소비자들이 발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저질 짝퉁이라는 교감이 있는 마당에 양질의 물건을 내놓아도 제값 받을 리 만무하다 보니 계속 여행객을 상대로 저질 제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위안화 절상으로 외국인에게 체감 가격은 더 올랐는데 인건비와 임차료 상승으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점주들의 고민도 엿보인다.

 슈수이제의 딜레마는 고통이 수반되는 창작을 생략하고 베끼기로 고속질주한 성장제일주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급해 하는 중국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가공할 만한 13억 시장의 흡입력에 매몰돼 돈 되는 것을 가져다 팔기만 해도 부자가 되는 지난 10년간의 성공 방정식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끌자 중국 인터넷엔 표절작 ‘차이나 스타일’이 등장한다. 엉뚱한 발상이 작렬하는 원작의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저질 해적판이지만 며칠 만에 1000만 조회수를 찍어준다. 이렇게 방대한 시장이 우리에겐 없는 매력으로 보이지만 차세대 성장동력인 창의력 측면에선 독이 되고 있는 게 중국의 현실이다.

 중국의 국제정치·경제적 영향력이 한국을 압도하고 가수와 댄서의 숫자가 한국의 수십 배가 넘는데 중국엔 왜 싸이가 없느냐고 한탄만 할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