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이 빼돌린 기술 특허에 자기 이름 끼워넣은 국책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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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내의 한 민간기업이 보유한 첨단기술을 내부 직원이 돈을 받고 동종 경쟁 업체에 빼돌린 사실이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경쟁 업체는 불법으로 빼돌린 기술을 바탕으로 특허를 출원했으며, 정부출연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 특허 출원 서류에 공동개발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기지방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대는 11일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민간기업인 H사의 전 기술개발이사 국모(40)씨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 강모(47)씨 등 12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국씨는 자신이 근무하던 H사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무선전력 전송 기술을 동종 업체인 U사로 빼돌린 혐의다. 무선으로 전자기기 충전을 가능하게 하는 무선전력 전송 기술은 세계에서 4개 업체만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업체로는 H사만 유일하게 갖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전자통신연구원 소속 강씨는 2008년 5월 H사에 무선전력 전송 기술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H사는 9년간 197억원을 투자해 이 기술을 개발한 상태였다. H사 대표는 애써 개발한 기술이 흘러 나갈 것으로 우려해 강씨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던 중 H사의 기술개발이사로 근무하던 국씨가 강씨에게 동종 업체인 U사와의 공동 연구를 추천했다. 국씨는 기밀 자료를 빼내 U사 등 6개 업체에 제공했다. 국씨는 그 대가로 U사로부터 2600만원을 받았다. 또 다른 업체로부터는 2000만원어치의 회사 주식을 받았다. H사의 기술을 넘겨 받은 U사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3건의 관련 기술 특허를 등록했다. 강씨는 U사가 불법으로 관련 기술을 확보한 사실을 알면서도 전자통신연구원과의 공동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1억2500만원을 지원했다. 또 U사의 특허 출원 서류에는 강씨도 공동 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U사와 강씨는 올해 1월에 2개의 특허를 10억원에 매각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국 이사의 추천으로 U사와 공동 연구를 한 것일 뿐 부정을 저지른 것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원=유길용·최모란 기자

◆무선전력 전송 기술=자기장을 이용해 무선으로 전력을 전송하는 기술. 케이블 없는 충전기 등으로 제품이 개발돼 휴대전화나 전기자동차 배터리 충전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고부가가치 기술이다. 2010년 12월 지식경제부가 첨단기술로 고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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