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유권자의 고민, 어찌하오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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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양선희
논설위원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은 중국 춘추오패(春秋五覇)였던 제환공(齊桓公)시대의 명재상이다.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스타 재상이기도 하다. 제환공은 관중을 ‘작은 아버지’쯤 되는 ‘중부(仲父)’로 부르며 모든 정사를 맡겼다. 나라에 큰일이 생겨도 “중부에게 물어보라” 하고, 정책을 간해도 “중부에게 말하라”고 했다. 이에 한 신하가 “모두 중부에게 맡기면 임금은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제환공은 이렇게 말했다.

 “임금 노릇이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나랏일을 중부가 다 알아서 하니 쉽고, 임금은 중부 같은 재상을 찾아내야 하니 어려운 것이다.”

 최고권력자 리더십의 요체는 결국 ‘사람’이라는 말이다. 제대로 사람을 찾아 적재적소에 앉혀 저절로 나랏일이 굴러가도록 하는 것, 이를 ‘용인술’이라고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오랫동안 귀감이 될 만한 용인술을 보지 못했다. 어느 정권이든 중반을 넘기면 예외 없이 대통령 측근 비리 소문이 떠돌다 후엔 사실로 확인되고, 대통령 최측근들은 정권 말기를 감옥에서 맞고, 아들 아니면 형·동생이 구속되는 역사가 반복됐다.

 그래서 올핸 유권자로서 결심한 게 있다. 대선주자의 용인술과 주변 사람들을 보고 한 표를 행사하리라. 한데 이 결심과 함께 나의 한 표는 수렁을 헤매고 있다.

 앞으로 대선은 두 달 남짓. 새누리당은 ‘인적 쇄신’ 이름 아래 자기네끼리 치고받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친박 대 친박, 친박 대 비박의 싸움도 분주한데, ‘정치쇄신위원장’이 ‘국민대통합위원장’ 영입에 반발해 기자회견을 통해 내분(內紛)을 공론화하고, 대선주자가 선거운동보다 내분 수습에 뛰어들어 봉합했다는데 여전히 불만에 찬 목소리를 높이는 건 내부인들이다. 선거운동보다 권력투쟁부터 하자는 것인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이렇게 없어도 되는 것인지, 박근혜 후보가 끌어모으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따져보기도 민망하다. 박 후보는 ‘국민대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한데 자기 주변 통합도 안 되는 마당에 무슨 기운으로 국민까지 통합할 것인가.

 다른 후보로 눈을 돌려도 가슴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안철수 후보. 하도 오랫동안 뜸을 들이며 많은 사람의 말을 들었다기에 나라를 세울 기재(奇才)들의 출현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의 사람들을 보면 각이 안 잡힌다. 한 예로 ‘경제혁신’을 부르짖는 그가 내세운 정치멘토는 이헌재와 장하성. 도대체 이들의 접점은 어디이며, 이 조합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생각과 개성이 전혀 다른 인재들을 잘 조화시켜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이 용인술이다. 그런데 그가 내놓은 첫 작품, 정책공약은 여전히 대학생 같은 이상론을 넘지 못한다. 현실정치에 중구난방 이상론자들만 포진시킨 듯한 널뛰는 용인술에 구름 잡는 정책공약은 실망보다 불안감을 준다.

 원래 정치에 참신하다는 인물들은 믿지 않는다. 한번 호되게 덴 경험이 있어서다. 노무현 정권이다. 종잡을 수 없이 튀는 ‘참신한’ 인물들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혼란이 오는지 우리는 수업료를 치르며 학습했다. 문재인 후보 진영은 바로 그들이다. 게다가 자기네끼리는 똘똘 뭉치는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배척하는 걸 ‘트레이드 마크’로 한다. 머리가 아플 따름이다.

 분주한 사람들은 더 있다. 요즘 차기 정권에서 한 자리를 노리는 일부 전직 장·차관이나 교수들은 향후 대통령인수위원회에 자신을 세일즈하기 위해 디밀 ‘헌책(獻策)’ 보고서 쓰기에 여념이 없단다. 대선 후엔 논공행상 참여자들과 새로운 ‘야심가’들이 격돌할 거다. 실전 용인술을 보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관중이 죽고 제환공은 간신배들을 등용했다. 그 결과는 ‘잔혹실화’다.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그는 자기 방에 감금돼 굶어 죽은 뒤 구더기가 들끓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군주의 용인술엔 국운과 자기 명운이 달린 것이다. 이제 두 달 남짓. 현실은 우울하지만, 그래도 한 표의 기준을 바꿀 생각은 없다. 무능·편협·부패·비리의 대통령 측근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