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라고 트로트만 듣나요? 클래식도 좋아하시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농어촌 등에서 재능기부 공연을 펼쳐온 바리톤 우주호씨. [김경빈 기자]

“도시는 클래식, 농촌은 트로트, 라는 건 고정관념입니다. 저희 공연을 얼마나 좋아들 하시는지 몰라요. 할머니가 우리 손자에게 이런 음악 들려줘서 고맙다며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돈 만원을 주신 적도 있어요. 필리핀에서 시집온 새댁이 시부모, 남편과 박수치며 서로 포옹하고….”

 바리톤 우주호(45)씨는 농어촌 곳곳에서 노래하는 기쁨을 이렇게 전했다. 한양대 음대를 나와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그는 2004년 귀국 직후부터 이처럼 무대 밖의 무대를 찾아나섰다. 사회복지시설, 농어촌 마을회관·경로당 등에서 연간 80~100회 공연을 해왔다. 그는 농어촌 무대를 “제 오랜 소망이자 꿈을 이뤄가는 곳”이라고 했다.

 “고교 2학년 때 성악레슨을 시작하면서 러시아 성악가 샬라핀(1873~1938)을 알게 됐죠. 테너는 카루소, 베이스는 샬라핀이라고 할 정도의 우상이죠. 그런데 샬라핀은 성악가이자 농민문화운동가였어요. 이삭줍기 노래, 뱃노래 같은 러시아 각 지역의 노래를 수집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같은 세계적 무대에서 러시아 노래를 불러 널리 알렸죠. 저도 조금이라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재능기부’ 대신 ‘재능나눔’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활동이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라는 의미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처음 공연할 무렵에는 두 번에 한 번은 저도 울고 나왔습니다.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 저도 점차 성숙한 것 같아요.”

안방처럼 생긴 노인정 등에선 연미복을 입고도 신발은 벗은 채 공연하기도 한다. 그는 한여름 공연 때도 연미복에 나비 넥타이를 갖춰 입는다고 한다. “저희로선 예의를 갖추는 의미이고, 보는 분들은 굉장히 좋아하시죠.”

 그의 농어촌 공연은 테너, 바리톤, 베이스, 반주자 등 매번 10명쯤이 한 팀을 이룬다. 이름하여 ‘우주호와 친구들’이다. “다른 성악가들에게 함께 하자고 하면 백이면 백, 기회가 없어 못했다고들 해요. 노래를 하겠다고 해도, 처음에는 뭔가 잇속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거절하는 곳도 있거든요.” 그는 “저도 처음에는 그런 경험을 했었다”면서 “클래식이라면 뭔가 잘 갖춰진 공간에서 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본격 무대에서도 그는 한창 바쁘다. 10일에는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소프라노 신영옥씨의 콘서트 무대에 함께 선다. 지난달 말부터 농협 NH아트홀의 예술감독도 맡았다. 이처럼 농어촌 재능기부를 하려는 이들을 위해 농림수산식품부는 스마일재능뱅크(www.smilebank.kr)를 운영하고 있다. 재능을 기부할 개인·단체·기업과 이를 필요로 하는 지역을 연계해주는 서비스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