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잔소리 공화국 만세 !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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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권석천
논설위원

두 달 전 ‘잔소리 공화국 만세!’(8월 1일자)를 통해 정부의 회식 확대 정책과 경찰의 음주문화 계도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오늘 잔소리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은 그제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 때문이다. ‘일(日) 애니 봤다가 경찰 전화… 음란물 단속 논란’(머니투데이). 아동·청소년 음란물에 대한 과잉 단속이 전과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일본에서 15세 이상 관람 판정을 받은 애니메이션 12편을 웹하드에서 내려받았다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대학생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대학생이 “성행위나 여성이 벗는 장면도 없는데 왜 음란물이냐”고 항의했으나 경찰은 “성적 유추가 가능해도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간주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동 성폭행이 이슈로 등장하자 검찰과 경찰이 “아동·청소년 음란물 유통을 근절시키겠다”고 나선 데 따른 현상이다. 단속 근거는 이번에도 3단 논법이다. 음란물을 보면 성충동이 생긴다→성충동이 생기면 성범죄를 저지른다→음란물을 못 보게 해야 한다. 대검은 지난주 ▶음란물을 내려받았다가 바로 지워도 ▶음란물에 교복을 입은 성인 배우가 나와도 ▶초범에 대해서도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네티즌들은 “야동(야한 동영상) 단속할 시간에 성범죄 수배자부터 잡아라” “영화 ‘은교’를 본 관객들도 처벌하라” “요술공주 밍키나 짱구도 안 된다는 얘기냐”며 반발하고 있다. 사실 야동 한번 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무심코 공유 사이트에서 성인물을 다운받았다가는 언제 수사기관에서 전화가 걸려올지 몰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성적 유추’까지 해내는 수사당국의 놀라운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우리 머릿속을 깨끗하게 비워 못된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려는 ‘친절한 배려’ 아닌가. 단속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법이 마구잡이로 안방까지 들어오는 건 인권침해 아니냐고? 야동이 오히려 성충동을 억제·해소하는 측면이 있지 않느냐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서글프지만 대한민국 남성 모두가 ‘잠재적 피의자’란 사실을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음란물 단속만이 아니다. 사회를 지킬 방어벽은 이미 하나둘씩 구축돼 가고 있다. 지난 2월 27일 국회를 통과한 43건의 법률 중엔 개정 경범죄처벌법이 있었다.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이 법에 나오는 경범죄 종류는 마흔한 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번 개정으로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에게도 벌금이나 구류 등을 부과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도록 시켜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은 사람’만 처벌할 수 있는데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노숙인·복지 단체가 “빈곤을 범죄화하는 것”이라며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해서 꿈쩍할 의원님들이 아니시다.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도 계속 처벌된다. ‘지나치게 내놓거나’와 ‘가려야 할 곳’이 무슨 의미인지는 경찰의 현장 감각에 맡기자.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주정을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문신을 드러내 혐오감을 줘도 경찰 판단에 따라 즉심에 넘겨진다.

 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남을 귀찮게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이 없는지. 경범죄처벌법의 묘미는 전 국민에게 죄의식을 심음으로써 기초질서를 내면화하는 데 있다. “법을 어겨도 된다는 불감증만 키울 수 있다”는 식의 반론은 사회 기강을 위협하는 ‘불온한’ 주장일 뿐이다.

 이제 우린 범죄로부터 안전한 뇌(腦)를 갖게 될 것이다. 다른 잔소리들도 처벌 규정으로 바꿔 나가자라고 쓰려는 순간 트위터 앱 ‘갑자기 경찰이 불러세웠다!’가 눈에 띈다. 내 이름을 넣고 엔터키를 친다. “경찰관: 거기 멍때리고 계신 분, 이름이 권석천? 당신 코털이 나와 있습니다.” 코털 나온 것도 경범죄? 덜컥 마음이 어수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