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씨 산문집 '고향 가는 길'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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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의 공간, 합일의 공간, 사귐과 어울림의 공간이던 그 우리의 마당. 거기엔 지기(地氣) 말고도 사람 온기가 고여있었다. 지심(地心) 에 인정이 얼리면, 사람들은 각기 제 마음의 품을 마당만큼 넓히는 것이었다. 울이 있기는 하되, 늘 넘치고 퍼지고 그래서 드디어는 동구 안 모든 존재들을 감싸 안는 넓으나넓은 품이던 우리들의 공간, 마당. 그게 없어지면서 우리들 마음도 남을 위한 품이기를 그만두었다. 우리들 누구나 '칸막이의 마음' 을 철옹성처럼 굳히고 살아가고 있다. "

고향 집에는 나와 남을 동시에 위하는 마음의 뜨락, 마당이 있었다. 그런 마당이 아파트 등 도시의 집에서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 그만큼 우리의 삶도 삭막해졌다.

마당이 있는 고향을 찾아 10여년전 낙향했던 김열규(민속학자.인제대교수) 씨가 최근 『고향 가는 길』(좋은날.8천원) 을 펴냈다.

초가집.고무신.고갯길 등 고향과 사라져가는 우리의 것들에 대한 산문 40여편을 실은 이 책은 친근하고도 쉬운 한국인의 정체성, 나아가 인간의 신화적 보편성 탐구로 읽힐 수도 있다.

"유일하게 남은 초가삼간. (중략) 그것은 정말이지 산모마저 숨진 어느 젖먹이 유복자의 모습 같은 것이었을까? 겨우해야 스무 해 남짓, 겨우 그것도 세월이라고 한 겨레 한 나라가 천년도 더 묵은 내림을 단종하다시피 한 것, 그게 사실인가? 이승살이 처음이자 마지막 의지가지를 겨우 그 시간 동안에 싹쓸이해 버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어도 좋은가?"

고향 일대를 뒤지다 발견한 초가 앞에서의 김씨의 감회다.

그 초가는 "아가야 네가 왔느냐, 기별도 없이 네가 왔느냐" 며 어머니.할머니 같이 맞아들이고 있다.

김씨는 초가는 어머니께서 두팔 둥글게 여미신 그 양가슴 속 같은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런 공간이 근대화 20년 남짓에 밀려 전부 사라져버려 우리가 타향살이, 뜬살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안타깝게 묻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고향을 떠나 살다 결국 귀향으로 마감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하고 묻고 있다. 고대 그리스 영웅 오디세이에게 고향을 떠나 치른 갖은 전쟁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욱 모험적이고 소중했다.

그렇듯 인간에 있어서 더욱 소중한 것은 출세보다는 고향의 이미지로서 떠올릴수 있는 공동체적 인간애가 아니겠는가.

김씨는 이 책에서 떠돌이 삶의 전장에서 지친 우리들을 아직 남아 있는 고향의 옛 것들을 보여주고 그 의미를 찾으며 인간 마음의 고향으로 데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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