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기업 문제점 곳곳에서 '삐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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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와 대림의 자율 빅딜로 공동 설립한 여천 NCC가 채 2년도 못돼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 로 돌변한 것은 기업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한화측은 노조에 대해 '법과 원칙' 을 강조해 온 반면 대림 경영진은 노조에 대해 '온건 노선' 을 표방해 왔다.

그런데 이같은 기업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준용 대림 회장은 노무관리 책임을 진 한화측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노조측과 협상에 나서 두 회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李회장은 이와 관련, "파업하는 노조를 달래 공장을 돌리는 게 중요한데 한화측 임원진은 법대로 처리하는 것을 강조해 답답하다" 며 두 회사의 뿌리 깊은 문화차이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 노조원들은 통합회사가 두고두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며 "다시 갈라서는 게 바람직하지 않으냐" 고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 이후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등으로 기업간 결합이 늘면서 통합회사 내 ▶민주성과 관료성▶변화에 대한 수용과 거부▶의사결정의 투명성▶전통성 중시 여부 등의 기업문화 차이로 인한 조직원 갈등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기업 결합뿐 아니라 공기업.금융기관.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통폐합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이질(異質)문화의 화학적 결합에 실패하면서 위기를 맞는 기업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 기업문화 인식부족이 문제=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출범한 한빛은행은 아직도 '아침 인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일은행 출신 행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상급자에게 두루 인사하고 자리에 앉지만 상업은행 출신은 이를 못본 체 하는 경우가 많아 사소한 갈등과 오해를 불러오는 일이 잦다고 한다.

최병길 경영전략단 단장은 "두 은행이 70년에서 1백년 넘게 몸에 밴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보니 규정에도 없는 사소한 일들로 갈등을 빚는 일이 많다" 며 "상대편의 다른 행동을 이해하기보다는 '건방지다' 는 등 부정적으로 보는 게 큰 문제" 라고 말했다.

崔단장은 "처음에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무시하고 넘어갔으나 조직융합과 시너지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밝혀져 요즘은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며 "인력을 주요부서에 능력 위주로만 배치했으나 최근에는 두 은행 출신을 고루 배려하고 있다" 고 말했다.

기업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사표를 내는 통합회사 직원도 많다.

1999년 정유업체 A사로 통합된 H에너지 출신의 재무담당 金모(35)대리는 최근 사표를 냈다. 통합 회사의 기업문화 차이가 엄청나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통합회사가 점령군과 피점령군으로 나누어진 분위기" 라며 "흡수된 회사 출신으로 푸대접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H에너지에서 옮겨온 부서 내 선후배 8명 가운데 3명이 2년새 회사를 떠났다.

99년 LG반도체를 흡수합병한 뒤 적지 않은 인원이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퇴사한 것으로 알려진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는 업종 특성상 인력이동 상황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LG관계자는 "현대에 흡수된 LG반도체 직원들이 연구원.간부직을 중심으로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상당수가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수.합병회사 직원의 20~30%가 새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년 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통합회사의 조직갈등 배경엔 승진 등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천NCC의 경우 99년 통합 당시 두 회사 종업원의 직급과 호봉이 차이가 나 생긴 불만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직급은 대림측 근로자가 낮고, 호봉은 한화측이 낮아 노사분규의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는 셈이다.

양측은 통합하기 직전 전략적으로 직급을 올리는 일까지 벌였다고 서로를 불신하는 분위기다.

◇ 한지붕 여러 노조도 불씨=한국철도차량.농업기반공사 등은 여러 회사가 통합한 후에도 노조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아 부작용이 일고 있다.

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 사업부를 통합해 만든 한국철도차량은 노조가 3개인 '1사(社)3노(勞)' 상태다. 이렇다보니 회사측은 한 회사 내에 3개의 기업문화가 상존하면서 내부통합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복지팀 관계자는 "통합회사에 노조가 여럿 있어 실질적인 통합과 구조조정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며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 다양한 화합방안=지난해 11월 삼양사와 SK케미칼의 화학섬유 부문을 통합한 휴비스는 기업문화 차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두 회사 출신을 직급별로 교차배치하고 있다.

삼양사 임원의 바로 밑 팀장은 SK출신을 앉히는 방식이다. 통합 직후 상이한 직급과 급여체계를 두 회사 중 유리한 쪽으로 조정해 직원의 사기를 높이고 불만을 없애는 노력도 했다.

합병을 앞둔 국민.주택은행도 최근 1박2일 동안 충남 천안 주택은행연수원에서 합병추진 실무자 1백60여명이 공동워크숍과 단합대회를 열어 '미래의 한가족' 의식을 높이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김시래.이현상 기자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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