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반값 등록금? 불우아동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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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오래된 일이지만 대학진학률이 너무 높다. 너도나도 대학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진학률이 한때 80%를 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이 일자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고학력일수록 취업률은 낮다. 눈이 높아져 웬만한 일자리는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이 안 되니 졸업 시기를 늦추고 대학원 진학도 많다. 그 바람에 돈은 더 늘어 간다. 사실상 실업자인데 아직 학생 신분이니 백수로는 잡히지 않는다. 공부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별 목적의식 없이 대학 가는 풍토를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마당에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대학 등록금을 깎아주겠다고 야단이다. 반값 등록금은 진학을 장려할 때나 필요한 일이다. 경제학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수요공급의 원리다. 가격이 낮아지면 고객은 몰리게 마련이다. 대선후보들의 셈법은 단순하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함이다.

 학생들은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된다고 아우성을 친다.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일자리는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비싼 돈 들여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다. 그렇다면 별 볼일 없는 대학에 가지 않는 게 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등록금을 낮춰준다고? 정치권은 몇 년 전부터 학생들이 부르는 비싼 등록금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반값 등록금은 요즘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경제민주화’와도 맞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이 용어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지만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노력’쯤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부잣집 자녀의 등록금까지 깎아줄 필요는 없다. 대학 교육은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재가 아니다. 대학 교육은 인적자산에 대한 투자이므로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오해다. 대학 진학은 각자의 선택 사항이다.

 정부가 나서 일률적으로 등록금을 낮춰주는 정책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면 똑똑하지만 가난한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느냐고? 그냥 대학에 맡기면 된다. 학교가 그런 학생을 뽑아 장학금을 주면 된다. 이것이 계층 간 교육 격차를 줄이는 방법이다. 정부의 간섭을 줄이는 것이 문제를 푸는 열쇠가 돼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시혜적 정책이 먹히는 것 같다. 어느 후보가 국민에게 어떤 선심을 쓰느냐가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후진 사회 다.

 나라의 장래를 진짜 걱정하는 지도자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가난한 대학생도 있고 여유 있는 친구도 있다. 대학을 아예 가지 못한 젊은이도 있다. 대학생 모두에게, 그것도 중산층 자녀에게까지 그런 혜택을 줄 필요는 없다. 곳간에 돈이 넘친다면 모를 일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등록금을 깎아주는 만큼 세금이 더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그럴 돈이 있으면 저소득층 아이를 보살피는 데 써야 한다. 교육은 고사하고 끼니를 걱정하는 불우 아동은 여전히 많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은 그들의 미래까지 좀먹는다. 사회를 향한 미움과 반항이 싹트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을 치유한 뒤에도 남는 돈이 있으면 대학등록금을 깎아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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