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강산 관광에 학생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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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어제 현대아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금강산 관광사업에 참여한 한국관광공사에 남북 협력기금 9백억원을 대출하기로 확정,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간 기업의 대북 적자 사업에 국민 혈세를 지원해야 하느냐는 기본적 의문과 함께, 관광공사와 현대아산이 남북 협력기금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제출한 '금강산 관광사업 추진계획' 상의 수익성 근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우선 금강산 관광사업을 둘러싼 정부의 일처리는 매우 교묘한 형식을 갖추면서 국민의 혈세를 쏟아붓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가 대북 경협의 원칙으로 제시했던 정경분리까지 어겨가면서 파산 직전의 현대아산을 살리기 위해 관광공사의 참여를 물밑에서 조율했다는 의혹은 남북 협력기금의 전격 지원 형태로 가시화했다고 본다.

관광공사와 현대아산이 지난해 금강산 관광사업의 협력약정을 맺은 연장선상에서 관광공사가 자율 참여한 것이라고 정부는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상의 문제로 보인다. 임동원(林東源)통일부 장관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남북 협력기금 지원의 신청이 없었다고 말했음에도 정부가 불과 1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거액의 기금 대출을 결정한 데서 잘 드러난다.

그 전격 결정이 현대아산이 북한과 합의한 관광 대가 미지급금 2천2백만달러의 6월 내 송금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더구나 기금 지원을 받기 위해 내놓은 수익성 전망에서 전국 고등학생 18만명의 수학여행지를 금강산으로 상정한 것은 의문점을 제기한다.

18만명의 고교생은 연간 수학여행 대상 학생의 30%에 가까운 숫자다. 이 많은 학생이 금강산 수학여행에 참여할 것이라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

그래서 정부가 고교생의 금강산 수학여행을 준의무화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나온다. 또 고교생 수학여행 경비 10만5천원(2000년 서울시 교육청 기준)보다 최소한 배 이상 더 들어갈 금강산 관광경비는 학부모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백보 양보해 그 계획대로 된다 하더라도 2003년과 2004년의 수익금은 투자액의 은행 여신금리의 절반에도 못미친다는 비관적 분석도 있다.

이런 불확실한 계획을 갖고 수익성의 근거로 내세운 컨소시엄에 국민 세금을 선뜻 지원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현대아산이 당초에 장밋빛 청사진으로 시작했던 금강산 관광사업에 정부가 또 다른 장밋빛 청사진을 바탕으로 국민 혈세를 쏟아붓는 식으로 이 사업의 상징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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