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하면 오래 산다고? 중년 남성 조사했더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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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호르몬이 줄어들면 오래 사는 것 아닌가요?”
최근 성기능 저하로 검사를 받았던 40대 남성 L씨는 남성호르몬이 저하됐다는 소견에 이렇게 반문했다. 며칠 전 조선 시대의 환관, 즉 내시가 양반보다 평균 17년을 더 살았다는 뉴스를 접한 게 그런 판단의 근거가 됐다. 급기야 물리적 거세나 약물로 남성호르몬을 차단하면 수명 연장이 가능할 것이란 보도도 잇따랐는데, 이는 분명 논리의 비약이다.

물론 각종 동물실험에서도 거세를 통해 수명 연장 현상은 관찰되었다. 쉬운 예로 거세한 애완견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수명이 길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우리가 엄밀히 따져볼 일은, 과연 이 수명 차이가 단순히 거세에 따른 남성호르몬 차단이 원인이냐는 것이다.

실제 많은 임상 연구에서는 남성호르몬과 수명에 대한 관계가 앞서 언급한 내용과 오히려 반대다. 즉, 중년남성에게 남성호르몬의 부족은 오히려 수명 단축과 관련이 있다. 캘리포니아대의 연구에서는 50세 이상 중년남성 800명을 조사했더니 남성호르몬이 부족한 쪽의 수명이 33%나 짧았다. 또, 워싱턴대의 연구에서는 40세 이상 남성에서 남성호르몬이 낮은 쪽의 사망률이 88%나 증가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하버드대 연구 결과다. 원래 남성보다 여성의 수명이 더 긴 것이 사실이다. 이는 단순 호르몬 차이가 아니라 더 근원적인 성염색체와 관련된 유전적 요소나 남녀의 성향 차이에 따른 생활 습관의 위험도와 관련된다. 만약 남성호르몬이 수명에 정말 바람직하지 않은 물질이라면 남성호르몬이 줄어든 갱년기 이후엔 남녀의 사망률 차이가 줄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임상적으로는 중년남성에서 남성호르몬을 줄인다고 수명이 연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기능이나 신체의 신진대사가 퇴화의 길을 걷게 된다. 남성호르몬의 부족은 각종 성인병, 대사 증후군과 연계되며 다양한 신체 질환 및 스트레스와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거세는 수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거세와 관련된 수명 연장을 남성호르몬의 부족과 연결 짓는 게 아니라, 뇌하수체 과활성과 여기서 생산되는 LH, FSH 등 호르몬이 수명 연장과 관계된다는 보웬 박사팀 등의 주장이 대세다. 또한 환관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그들이 평균 19세에 거세한 것으로 확인된다. 남성호르몬이 강하게 노출되는 제2차 성징 및 사춘기 직후에 해당되는 시기로, 일반 남성에 비해 애초에 남성호르몬에 대한 노출이 초기에 적었던 것이다.

즉, 거세를 통해 수명 연장을 이루려면 성인기 이전에 남성호르몬이 차단되어 중성화된다면 가능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수명을 늘리려면 제2차 성징 전후 남성호르몬 활성화가 진행되지 않아야 하므로 이런 경우 정상적인 성인 남성으로서의 성생활이나 임신 등은 포기해야 한다.
적어도 정상적인 남성호르몬의 작용에 따라 성생활 등 건강한 성인 남성으로 살면서 동시에 오래 살고 싶다면 남성호르몬 등의 관리를 통해 갱년기의 진입을 늦춰야지, 반대로 남성호르몬의 차단이나 남성호르몬의 결핍이 수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긴다면 정말 대단한 오산이다.

강동우·백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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