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부 찍는 이케아 카탈로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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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호 29면

지난주 서구권 미디어를 후끈 달군 기사 중 하나가 세계 최대의 가구·생활용품 유통업체인 이케아(IKEA)의 카탈로그 이야기다. 영어판에는 세면대·소파·부엌에 분명히 있는 여성의 이미지가 사우디 아라비아판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가구 디자이너 4명이 자신들의 작품과 함께 있는 사진에서도 유일한 여성 디자이너의 이미지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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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여성을 빼고 별도 편집해 사우디판을 제작한 것이다. 여성이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거북해 하는 보수적인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대부분인 사우디 남성들을 의식한 조치다. 물론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현지 풍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보도 사진도 아니고 소비자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민간기업의 소비자 주문용 카탈로그 사진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 편집은 기업 재량에 속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산유국인 사우디 시장은 이 업체에 중요하다. 이케아는 1984년 사우디 제다에 중동 1호점을 열었다.

하지만 이러한 편집이 남녀평등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서구권에서 일자 이케아는 재빨리 반응했다. “이케아의 가치와 충돌한다”며 사과한 것이다. 스웨덴 정부도 “이케아는 민간기업이지만 전 세계에 스웨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서로 다른 지역판 카탈로그의 사소한 편집 차이가 세계적인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케아 카탈로그가 그만큼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1951년 처음 발간된 이 카탈로그는 현재 매년 2억1000만 부를 인쇄해 각 가정으로 보낸다. 36개국에서 27개 언어로 55가지 판으로 발행한다. 양으로는 세계 최대의 정기 간행물이다. 어떤 베스트셀러도 이 정도 물량을 인쇄한 적은 없다. 성경보다 더 많이 인쇄된다는 소리를 듣는다. 발행비로 전체 마케팅 비용의 70%를 쏟을 정도다.

인터넷 시대에 무슨 종이로 된 카탈로그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케아의 생각은 다르다. 고객들이 직접 점포를 찾거나, 인터넷 주문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거나, 우편주문서에 물품번호를 적기 전에 반드시 이 카탈로그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구매 욕망을 일으키도록 최고로 멋진 제품 사진과 설명으로 편집한다는 게 제작 원칙이다.

이케아 카탈로그의 매력은 더 있다. 여기에 적힌 물건값은 다음 해 새 카탈로그가 나올 때까지 절대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1973~74년 1차 석유파동 때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끝까지 적힌 가격을 고수했다. 그래서 이 카탈로그는 기업의 신뢰를 상징한다. 매년 1만2000~9500종의 상품을 싣기에 다양성의 심벌로도 통한다.

카탈로그는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 회장의 고향인 스웨덴 올름훌트에서 제작된다. 이곳에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사진 스튜디오가 있다. 오로지 이 카탈로그를 제작하기 위한 시설이다. 이런 정성이 세계 일류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는 아직 매장이 없지만 조만간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한국어판 카탈로그도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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