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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독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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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사흘 전 일본의 한 주간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 때문에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지난달 26일 제1야당 자민당의 새 총재로 뽑힌 아베 신조(安倍晋三·58)의 부인 아키에(昭惠·50) 여사가 ‘탈 한류팬’을 선언했다는 내용이다. 기사에 따르면 열렬한 한류 팬이던 아키에는 “한류 드라마 전문채널인 KNTV에도 가입해 (한류 드라마를) 시청해 왔지만 최근 모두 그만뒀다”고 한다. 한국어도 배우다 그만뒀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편이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 한국에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는데 부인만 한가하게 한류를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기사의 진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키에가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유추는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아키에는 단순히 한류 드라마만 즐겼던 게 아니었다. 주일 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아무 사전연락도 없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오곤 했다. 물론 본인이 싫어져 멀리 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남편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일본 내 보수세력의 반발을 감안해 그런 것이라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문화는 정치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말이다.

 ‘아베 중심의 일본’은 단지 집안 사정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관료들도 급속하게 아베 진영으로 기울고 있다. 재무성의 고위 관료가 한·일 통화스와프 기간 연장을 한국이 요청하지 않으면 안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자민당 내부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였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일본의 최대 재계단체 게이단렌(經團連)도 집권 민주당에 앞서 자민당과 먼저 정책대화를 하기로 했다. 이미 여야가 뒤바뀐 듯한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아베 자민당’의 면면을 보면 아베가 집권했던 5년 전과 판박이다. 왜곡된 역사관으로 무장해 있는 우익 의원들이 줄줄이 포진해 있다. 아베 본인이 정책 노선을 수정하고 싶어도 그걸 용납할 수 있는 구도가 아니다. 그가 총재 취임 후 TV에 출연한 자리에서 “야당 총재 때와 총리가 된 뒤의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고 했다 즉각 “그렇다고 내가 말을 바꾸겠다는 건 결코 아니다”고 손사래를 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려되는 것은 ‘아베 총리’가 등장할 경우 브레이크 역할을 할 인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2006년 아베 정권 때는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아베의 소속 파벌 수장으로서 아베의 편협된 ‘아시아관’을 교정했다. 그러나 이미 아베는 모리 전 총리를 내친 상태다. 아베가 두려워했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도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로선 앞으로 수년간은 ‘아베의 독주’를 지켜봐야 하는 우울한 상황이 올 공산이 크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베가 그토록 대립각을 세우는 한국과 중국이 독도와 센카쿠 문제로 ‘아베 총재’ 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