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한 브랜드’ 신뢰 바탕으로 한 고객에게 9대까지 팔아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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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판매에 발을 담근 지 10년이다. 이 중 9년을 한 브랜드에만 있었다. 처음엔 힘들었고 방황도 했다. 이를 이겨내고 지금은 비결을 가진 판매 고수가 됐다. 지난달 13일 그를 만나기 위해 신사동에 위치한 재규어 랜드로버 천일오토모빌 강남전시장을 찾았다.

글=조한대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9년 동안 재규어 랜드로버에 있었기에 고객에게 신뢰를 얻었다고 말하는 전진홍 팀장.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했을 때다. 캠퍼스 게시판에 외국계 기업이 인수한 국내 자동차 회사 공채 공고를 봤다. 외국계 기업이니 근무여건, 복리후생이 좋겠다 생각했다. 이미 외국계 보험회사 관리부에 친누나가 다니고 있었다. 그 영향을 받았다. 언제 갈지 모르는 워킹 홀리데이였기에 어차피 휴학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노는 것보단 낫다 싶었다. ‘직원가에 자동차를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어린 생각도 했다. 외국 다녀와 모바일 회사에 들어가겠다던 한 청년의 꿈은 이렇게 바뀌었다. 입사하고 보니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 아니었다. 같은 브랜드를 사용하지만 제작만 외국계 기업이 했고 판매는 국내 회사가 전담했다. 가장 큰 매력이 사라졌다. 그래도 만족해 하는 입사 동기들을 보며 두 달간의 연수를 버텨냈다.

  영업소에 배정받았다. 2, 3개월은 무조건 열심히 뛰었다. 직장 선배가 명함 40장을 거둬오란다. ‘내가 이거 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나’ 회의감도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감정은 깊어만 갔다. 12월 눈이 내리던 날 낮이었다. 강동역 근처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한 손엔 전단지를 다른 한 손엔 홍보용 책자를 가득 든 채였다. 파란불로 바뀌어 길을 건너는데 그만 발이 미끄러졌다. 손에 들고 있던 전단지와 책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걸 버리고 그냥 갈까.’ 얼굴이 붉어졌다. 신호는 이미 바뀌었다. 정지선에 서 있던 자동차가 빵! 빵! 경적을 울렸다. 그때 ‘버리고 가면 영업을 못한다. 회사 그만둬야 한다’라는 마음 속 외침이 들렸다. 그는 묵묵히 전단지를 주워 들고 길을 건넜다. 전진홍(35)은 그렇게 위기를 건너 지금 재규어 랜드로버 천일오토모빌 팀장이 됐다.

-횡단보도에서 생긴 일이 왜 기억에 남나.

 “당시 자동차 판매에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꿈꾸던 일이 아니었다. 일을 그만두는 동기들도 속출했다.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그때 일로 생각이 바뀌었다. 영업을 앞으로 계속 해보자는 의지가 생겼다. 이후 수입차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수입차 시장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여자 동기 한 명이 수입차 회사로 전직했다. 그의 친오빠는 이미 수입차 판매사원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친오빠를 만났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 수입차 시장은 크지 않았다. 전시장도 별로 없고 판매사원 수도 적었다. 만난 자리에서 그가 이쪽 시장이 발전단계라고 말하더라. 블루오션이라 판단했다.”

 전 팀장은 1년 동안 국내 자동차 판매를 하다 2003년 7월 재규어랜드로버에 입사한다. 옮긴 후 꾸준히 실적을 냈다. 2007년엔 재규어 자동차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팔았고 2009년부터 지난해까진 3년 내리 ‘우수 세일즈 컨설턴트’에 선정됐다. 올해 7월 기준 천일오토모빌 내에서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비결이 뭔가.

 “한 브랜드에 오래 있었다는 점이다. 9년이다. 수입차 시장이 이만큼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처럼 오랫동안 한 브랜드에만 있는 판매사원을 찾기 어렵다. 재규어 랜드로버엔 ‘전진홍’이 있다고 고객이 말한다. 내가 도중에 타 회사로 옮겼다면 이런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고객은 차를 산 이후에도 판매사원에게 계속 차량과 관련해 도움받길 원한다. 직접 서비스센터를 찾아가 차를 맡기기 보단 판매사원이 대신 해주길 바란다. 타 브랜드로 가면 도움 주기 어렵다. 한 브랜드만 고집한 나는 이 점에서 고객에게 신뢰감을 얻었다. 수입차 시장에선 입소문이 매우 중요하다. 차량 판매 이후에도 고객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또 다른 게 있을 듯하다.

 “내 경험을 들려주겠다. 입사 초기에 성북동의 한 변호사를 만났다. 차량 시승을 포함해 3번 상담했다. 계약을 안 하더라. “변호사님, 결정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그 고객이 이렇게 답하더라. “정진홍씨, 세 번 만나는 동안 내가 왜 이 차가 필요하고 왜 사는지 물어본 적 없죠.” 아차 싶었다. 당시 국내에서 낯설었던 ‘재규어’를 알리는 데만 집중했다. 고객 가족은 어떻게 되는 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이때부터 고객의 말을 경청한다. 질문을 던지고 끝까지 듣는다.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이야기를 많이 들을수록 고객에게 적합한 차량, 구매 방법 등을 제시할 수 있다. 100가지 장점이 있다고 다 말할 필요 없다. 고객 성향을 파악한 후 필요로 할만한 장점을 부각해 설명해야 구매로 이어진다.”

- 그게 다인가. 말한 김에 다 밝혀달라.

 “여자 고객일 경우 차량 출고 시 꽃바구니 선물을 해드린다. 새 차보다 꽃 선물을 훨씬 좋아하는 고객도 많다(웃음). 한 번은 남편이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재규어 XJ를 사줬는데 내가 새 차에 꽃 장식을 해드린 적도 있다. 일종의 감성마케팅이다. 또 메모를 꼭 한다. 한 고객과 상담을 몇 차례 가지는데 지난번에 했던 질문을 또 하면 신뢰감이 줄어드는 법이다. 수첩에 고객 직업, 자녀 수, 취미, 전에 타던 차량 등 구체적인 사항을 모두 적어둔다. 상담을 앞두고 확인한다. 이제 비결이라고 할만한 점은 더 없다(웃음).”

-재규어 랜드로버 차량의 좋은 점이 뭔가.

 “루이비통 가방을 ‘3초백’이라고 부르지 않나. 길을 걸으면 3초마다 볼 수 있다고 해서 말이다. 수입차도 마찬가지다. 벤츠, BMW, 아우디는 너무 흔하다. ‘강남 소나타’라는 말도 있지 않나. 브랜드 가치가 떨어졌다고 본다. 반면 재규어는 희소성이 있다. 경쟁 브랜드에 비해 조금 비싸지만 사람들은 가격 차가 크게 나는 줄 알고 있다. 고객이 ‘프리미엄 자동차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차인 재규어는 독일차 같지 않고 감성적이다. 데시보드 상단을 가죽 처리했고 우드 마감재를 사용했다. 오디오는 ‘메르디앙’, ‘B&W’다. 랜드로버는 프리미엄 SUV로서 타 브랜드와의 경쟁이 의미 없을 정도다. 독보적이다. 없어서 못 판다.”

-미래 판매사원에게 한마디 해달라.

 “한 대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내려 하지 마라. 오래 못 간다. 나중에 고객이 알면 다시 찾겠는가. 난 한 고객에게 9대까지 팔았다. 또 판매사원은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다. 계획을 짜서 움직여야 한다. 한 브랜드에 오래 있어야 한다. 자주 옮기면 고객이 배신감 느낀다. 마지막으로 힘들더라도,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더라도 1년은 견뎌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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