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원성진, 우승을 예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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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결승 3국)
○·구리 9단 ●·원성진 9단

제11보(132~153)=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순식간에 “이길지도 모른다”로 바뀌었다. 문득 구리 9단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 지난해 허영호 9단을 꺾고 우승할 때와는 뭔가 다른 모습이다. ‘거북이’ 원성진 9단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구경꾼들의 가슴은 새로운 감동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다.

좌상에서 백이 여러 수를 허비하며 계속 머뭇거리는 사이 흑은 전광석화처럼 사방을 차지했다. 당시엔 정확히 몰랐지만 133으로 밀고 들어갈 무렵엔 이미 ‘흑 우세’로 판세가 뒤집혀 있었다. 그러나 승부는 아직 멀게만 느껴졌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결승전’이란 얼마나 많은 파란을 준비해 두고 있었던가. 148까지 좌하 흑 6점이 주르르 떨어져 나가자 머릿속은 더욱 미묘하고 복잡해졌다.

 구리 9단의 140은 ‘수순의 묘(妙)’였다. 지금이라면 141은 당연하다. 그러나 142가 선수로 들으면서 144의 절단이 성립한다.

좀 전까지는 ‘참고도’ 흑1로 찌르는 수가 있었으나 백△가 온 다음에는 백2로 늘어 그만이다. 결국 148까지 6점이 백의 수중에 떨어졌고, 검토실은 다시 부지런히 계가에 몰두한다. 그러나 모종의 느낌은 온다.

원성진 9단이 신음소리 한번 없이 141부터 시원시원하게 6 점을 버리는 것은 그가 어렴풋이나마 우세로 승리를 예감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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