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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에서 최고의 배(ship)는 리더십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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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미국 메릴랜드주 애너폴리스에 있는 미 해군사관학교에 가면 이런 글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The best ship in times of crisis is leadership.’ ‘위기 상황에서 최고의 배는 리더십’이라는 뜻이다. 이 얘기를 해준 사람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지낸 박진 전 의원이다. 미 해사를 방문했을 때 자신이 직접 본 문구라는 것이다.

 해군 장교 출신이기도 한 박 전 의원은 이 말 덕분에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과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파월의 자서전인 『나의 미국 여행』 한국어판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며 이 말을 했더니 그 자리에 있던 파월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훌륭한 리더십 이야기”라고 극찬을 하길래 미 해군에서 나온 말이란 것만 밝히면 언제든지 사용해도 좋다고 기분 좋게 저작권을 ‘양도’했다고 한다.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폭풍우를 만난 배는 선장의 리더십에 따라 침몰할 수도 있고, 무사할 수도 있다. 8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은 5년간 ‘대한민국호(號)’를 맡아 무사히 항구까지 끌고 갈 리더십을 선택하는 소중한 기회다. 구체적인 선택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인테그러티(integrity)’ 아닐까 싶다.

 우리 말로 정직성이나 진실성쯤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어 단어 인테그러티의 의미가 다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가치관이나 신념,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행동하는 사람이 인테그러티를 갖춘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혼자 있을 때 하는 언행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스티븐 카터 미 예일대 교수(법학)에 따르면 인테그러티는 3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면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세 번째 단계다. 이 세 가지를 보면 그 사람이 인테그러티를 갖춘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논란이 됐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하자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 모두 “아주 힘든 일이었을 텐데 참 잘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말 필요한 일을 했다”며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높이 평가했다. 필요할 때 힘든 결단을 할 줄 알고,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세 명의 경쟁자.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인테그러티를 갖춘 리더십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다면 순진한 바보의 성급한 김칫국 마시기일까.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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