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자 관장 “두 남자 덕에 큰 상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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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희자(72·사진) 아트선재센터 관장이 한국 여성 최초로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26일 수상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고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 등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8번째 수상이다. 몽블랑 문화재단이 문화예술 후원자를 기리기 위해 1992년 만든 상으로 10여 개국에서 나라별 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뽑고 있다.

정 관장은 아트선재센터를 운영하며 한국의 현대미술 분야를 후원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정 관장을 만났다.

 “남편(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1990년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큰 아들 선재, 이 두 남자가 있었기에 이런 수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한양대 건축학과를 나온 정 관장은 김 전 회장과 결혼 후 십여 년간 가정주부로 살았다. 남편의 해외 출장을 따라다니며 미술관을 빼놓지 않고 다닌 덕에 그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다. 84년 힐튼호텔(현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 경영에 참여하면서 그의 영역은 컬렉터로도 확장됐다. “베트남·중국 등에 새 호텔을 지을 때마다 현지 신진 작가를 찾아 후원했고 그 그림을 호텔에 걸었죠.”

 선재씨가 세상을 떠난 뒤 경주와 서울에 아트선재미술센터를 짓고 젊은 작가들을 발굴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엔 96년 제1회 때부터 ‘선재상’을 만들어 영화인도 후원하고 있다. 정 관장은 상금 1만5000유로(약 2200만원)를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에 보낼 계획이다.

  “사람의 형체는 없어졌지만 영혼은 남는다는 생각에 미술관을 만들었고, 마찬가지로 대우와 남편의 이름도 활동을 통해 영혼처럼 남게 하기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13년. 이 이야기가 나오자 정 관장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건) 운명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 것 같고요. 개인의 사리사욕만 챙기다 회사가 넘어갔다면 사람들이 아쉬워하지 않았겠죠. 나라 살리고 회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이루지 못한 한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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