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소아비만을 치료하려면 아빠를 설득해라?

중앙일보

입력

[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병원에서 3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6세 여아와 엄마가 진료를 받으러 왔다. 면담과정에서 엄마는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다. 맞벌이 사정상 아이에게 올곧은 정성을 제대로 쏟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만도 97퍼센타일 밖이었던 아이는 초기검사에서 이상징후가 여럿 나타나 치료를 받기로 하였다.그런데 며칠 후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먼 곳에서 오려면 맞벌이 부부의 특성상 아빠의 도움이 필요한데 아빠가 치료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말다툼 끝에 가려면 너 혼자 데리고 가라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하였다. 결국 엄마는 치료를 포기하였고 검사결과를 들으러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한 날 여러 번 눈물을 보이고는 쓸쓸히 진료실 문을 나섰다.

이처럼 소아비만 치료에는 치료의 가장 중요한 결정권자인 아빠와 엄마, 때로는 조부모와 엄마의 갈등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소아비만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직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의 풍조를 나타낸다. 소아비만의 심각성에 대한 인지차이(cognition gap)는 세대차, 성별차 등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난다.

인지차이가 빚어내는 진료실의 풍경을 살펴보자.

? 대부분의 소아비만아동들은 엄마들이 데려온다.
? 아빠들은 마지못해 끌려오거나 동행하지 않는다.
? 조부모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순진하다.
본인들이 가진 잘 먹으면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병원에서 소아비만의 심각성을 이야기해주면 오히려 아빠보다 더 순순히 아이들의 비만치료에 동조한다. 그만큼 손자손녀를 아끼기 때문이다.
? 아이를 위해서 아버지에게 미션을 내주지만 120% 자발성을 보이는 아버지들은 많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주말운동인데 거르는 경우가 많고 피곤하다는 핑계가 주를 이룬다. 치료가 되어 아이의 모습이 비만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아빠들의 태도가 약간씩 변화를 보인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 대체로 남자들은 비만의 심각성에 대해 둔감하다.
한국인의 비만심각성 인지도는 건강+외모의 결합체인데 대체로 여성들이 외모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강하기 때문에 여성에서 아이들의 비만심각성에 대한 각성도가 크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국여성들은 비만증가율은 주춤한데 비해 남성들의 비만인구는 3배정도 증가하였다고 한다. 이런 양상은 소아청소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아빠들이 자녀들의 비만에 둔감하고 엄마들이 민감한 이유는 부모 본인들의 비만의 심각성에 대한 인지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 엄마들은 감성적으로 아이의 비만에 민감하다.
그것은 아이의 생활 일거수일투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즉 아이들과 밀착되어 있을수록 아이들이 비만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 그리고 건강상의 위해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최근 들어 아이의 체형 역시 엄마들의 비교대상에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 대체로 아빠들은 결과에 민감하고 엄마들은 관계를 중요시한다.
‘살은 빼면 되지’라는 결과론적이고 당위적인 생각은 살을 빼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문제와 갈등, 정서적 상처들을 보듬어 안는데 취약성을 드러낸다. 반면 아이들은 살을 빼야 한다는 당위나 빼고 난 후의 결과보다는 지금 당장 아이들이 가지는 여러 문제들에 집중하고 아이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주목한다.

지금 소아비만은 아이들의 건강과 미래를 해치는 중대질환이지만, 아직까지는 하나의 상태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혼란지대에 놓여있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하지 않는 것이 낫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까 말까 망설일 때는 거리낌없이 주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의 비만을 치료하는데 보다 적극적인 엄마의 의견이 관철될 필요가 있다. 물론 항상 예외적인 경우는 존재한다. 누가 되었던 배우자중 소아비만 치료에 적극적인 사람의 말을 들으면 우리아이의 몸과 마음은 가벼워진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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